"저도 조용히 살고 싶다니깐요"

코미디언 이주일이 "못생겨서 죄송하다"고 너스레를 떨던 80년대 초.

대다수 사람들은 결코 조용히 살아갈 수 없었다.

"못난 백성 잠자코 있으라"고 슬슬 달래도 조용히 살아질 수 없는 세월이었다.

의대생이 프레스공이 되고 음악도가 미싱사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절 "경멸할 만한 것을 경멸할 줄 알았던 용기 있는" 젊은이들은 감옥으로 내몰렸다.

소설가 방현석(39)씨의 새 장편 "당신의 왼편"(전2권,해냄)은 386세대의 후일담에 속한다.

20년이 흐른 지금, 선술집 소주는 여전히 시리도록 투명하다.

술병을 붙안고 맹세해야할 언약만 사라진 것이다.

작가는 묵직한 사회 문제를 대중적인 어법으로 풀어낸다.

주인공 현현욱은 문학을, 도건우는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1980년 "<><><>같은 놈들만 아니면 예술을 했을" 청년들은 폭풍우에 휩쓸리듯 학생운동에 가담한다.

이후 두사람은 공장에 위장 취업, 도건우는 프레스기에 두 손가락을 잃는다.

다시 바이올린을 할수 없게 된 도건우는 여공과 결혼, 산업재해상담소를 차린다.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현현욱은 모진 고문을 당한다.

6.10 항쟁 이후 도건우는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는다.

현현욱은 대기업 회장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다 30대 이사로 발탁된다.

"형들 보면 성질나 죽겠어. 운동 일선에 남아 있는 놈들에겐 아직도 그 짓하고 있냐고 비아냥거리고, 제자리 찾아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변절자 취급하고.

그러는 새끼들한테 왜 형들이 고개숙이고 있냐고" 작가는 80년대 운동권을 최소한의 부채감도 없이 능멸하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사실 386세대는 "젊은 피 수혈론"으로 도덕적인 상처를 입었다.

프랑스의 68세대(1968년 학생운동을 담당한 세력)는 물론, 4.19세대 만도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지금 당신이 가운데서 "나비처럼 가볍게" 떠들수 있는 것은 "당신의 왼쪽"에 누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설의 제목 다음엔 "소 팔아 마련한 등록금으로 등사기를 샀기 때문에 지금은 정수기를 외판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생략돼 있다.

윤승아 기자 a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