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두커피 전문점, 다방 위력에 고전 ]

따지고 보면 커피는 유독 한국에서만 서자 취급을 당해 왔다.

인스턴트커피한테 "커피"란 이름을 빼앗기고 "원두커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차별대우나 다름없다.

물론 1백년전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고종이 마셨던 커피는 원두커피였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인스턴트커피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원두커피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바람에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때로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많은 커피 마니아들이 원두커피 전문점을 열었다가 돈만 날리고 손을
털었다.

1979년 서울 동숭동에 "난다랑"이란 커피숍을 차린 정영진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일본에서 커피 끓이는 법을 배우고 돌아와 커피숍 "난다랑"을 열고
각종 커피를 선보였다.

다행히 찾는 사람이 많아 매장이 붐볐고 분점이 한때 70개에 달했다.

그러나 정씨는 끝내 인스턴트커피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허가를 받지 않고 커피를 볶은 것이 빌미가 돼 1986년 소송에
휘말렸다.

4년뒤 재판에서 이기긴 했지만 "난다랑"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결국 정씨는 "난다랑"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은 한국인의 커피 입맛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 직후 서울에는 원두커피전문점들이 속속 들어섰다.

특히 압구정동 대학로 신촌 등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곳에서는 커피메이커
에서 커피를 추출해 내놓는 전문점들이 인기를 끌었다.

자뎅과 사카란 이름의 원두커피전문점이 이 시대를 대표했다.

하지만 원두커피 전문점은 예상외로 고전했다.

전문점이 늘어나는 동안에도 다방은 여전히 위력을 과시했다.

원두커피는 이른바 "다방커피"(인스턴트커피)를 밀어내지 못했다.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쉽사리 입맛을 바꾸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두커피 전문점들이 제대로 만든 커피를 내놓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커피시장은 다시 전기를 맞았다.

지난해 미국의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뒤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스타벅스는 미국 곳곳에 에스프레소바 스타일의 커피숍을 열어 10여년만에
"커피혁명"을 일으켰던 업체.

지난해 7월 이화여대 정문 앞에 1호점을 오픈한데 이어 최근 대학로에
2호점을 열었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