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나 SF영화를 단순히 일회적인 오락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들중에는 찬찬히 들어다볼때 꽤 의미심장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들도 적잖이 있다. "드라큐라" "미저리" "터미네이터2"등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영화들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말 한 영국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드라큐라"는 "성적 자유가
억압된 빅토리아 시대의 풍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편집광
증세가 있는 한 여인에게 강금당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얘기를 다룬 "미저리"
에는 독자의 요구에 자신의 작품성향이 좌우되는 현대 작가들의 우울한 현실
이 녹아있다는 해석이 내려진다.

"졸업"의 마이클 니콜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울프"도 이런 의미에서
꽤 수준 높은 공포영화라 할 만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우리의 "구미호"만큼이나 서양공포영화에서 자주 원용되는 "늑대인간"
아이템을 빌려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맛은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
이 주는 무서움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극도로 억압
받는 시기에는 인간이 다른 무언가로 변하고 싶어 한다는 "시대와 존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서 그 묘미를 느낄 수 가 있다.

대형 출판사 편집장 윌 랜들(잭 니콜슨)은 여행도중 자신의 차에 치인
늑대를 길 밖으로 끌어내려다 늑대에게 손이 물리고 만다. 이 사건 이후
윌의 신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지독한 원시인 그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수십여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줄줄 읽어내려간다.
수십미터 떨어진 화장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도 그의 귀에는 마치 옆에서
떠드는 것처럼 들리며 아내의 속옷에서 나는 냄새로 그녀의 불륜관계까지
잡아낼 정도로 후각이 발달한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가 그에게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 "모든 감각의 증폭을 통해 이전에는 누리지 못하던
재능이나 초능력을 부여받은 아주 특별한 존재로 변해가는 모험"을
즐긴다고 할까. 그러나 이에는 커다란 댓가가 따른다. 그의 피에 스며든
야수성으로 밤마다 사람을 물어 뜯어 죽어야 하니 말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조금은 야비하게 생긴 잭 니콜슨의 이미지가 영화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스트윅의 마녀들"에서 잭 니콜슨과
호흡을 맞혔던 미셀 파이퍼,"사운드 오브 뮤직"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등으로
구성된 호화배역진의 연기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