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한류 확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IT) 관련 법연구 권위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같이 우려했다. 망중립성 개념은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온라인에서 콘텐츠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쟁점화됐다.

망중립성이 뭐길래…

 '탈코로나 시대의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 한미 디지털 통상' 웹 세미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좌),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 센터장인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우) [사진=웹 세미나 캡처 캡처]
'탈코로나 시대의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 한미 디지털 통상' 웹 세미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좌),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 센터장인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우) [사진=웹 세미나 캡처 캡처]
박 교수는 지난 18일 주한미국대사관과 사단법인 오픈넷, 고려대 미국법센터, 한양대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가 공동 주최한 '탈코로나 시대의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 한미 디지털 통상' 웹 세미나에서 망중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망중립성이란 통신망 제공사업자(ISP)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을 가리킨다. 망을 보유하지 않은 콘텐츠 제공자(CP) 같은 사업자도 동일한 조건으로 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핵심이다.

박 교수는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망중립성과 관련된 법이 생겨 국내 콘텐츠 생산 주체들이 현지 망제공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생겼다"면서 "세계적으로 망이용료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류의 확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콘텐츠 제공자 서비스 안정화법(넷플릭스법)을 보면 CP들 데이터가 ISP 이용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는 국내 CP뿐만 아니라 트위터 등 해외 CP도 전부 적용받게 된다"며 "이렇게 될 경우 트위터는 국내에 캐시서버(인터넷 사용자가 자주 찾는 정보를 따로 모아 두는 서버)를 만들어놔야 하는데 이는 '서버 로컬라제이션'(Server Localization), 즉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망중립성 개념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ISP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트래픽을 유발하며 성장했지만 접속료 외의 추가 비용은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사용료를 둘러싸고 소송전이 격화하면서 국내에서도 망중립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SK브로드밴드-넷플릭스가 소송하는 이유

주한미국대사관과 사단법인 오픈넷, 고려대학교 미국법센터,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가 공동주최한 '탈코로나 시대의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 한미 디지털 통상' 웹 세미나 [사진=웹 세미나 캡처]
주한미국대사관과 사단법인 오픈넷, 고려대학교 미국법센터,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가 공동주최한 '탈코로나 시대의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 한미 디지털 통상' 웹 세미나 [사진=웹 세미나 캡처]
두 업체는 지난달 3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망사용료 관련 소송 3차 변론을 벌였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이용대가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재판이다. 3차 변론에서도 양측은 입장차를 되풀이했다. 급증한 트래픽에 대한 비용을 내야 한다(SK브로드밴드)는 입장과 망 이용대가는 이중과금(넷플릭스)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 소송의 핵심이 바로 망사용료다. 넷플릭스 같은 CP가 자사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에서 SK브로드밴드 등 ISP에게 망사용료를 내야 하는지가 쟁점. 넷플릭스는 망중립성을 들어 이중과금이라 주장한다. SK브로드밴드가 이용자에게 이미 비용을 한 차례 받았으므로 넷플릭스로부터 망사용료를 받는 건 이중과금이라는 얘기다. 반면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 유발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비용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망중립성은 2008년부터 논란이 됐다. 2008년 컴캐스트(세계 최대 규모 케이블 TV 업체)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비트토렌트' 서비스를 차단시킨 게 발단이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당시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서비스 차단을 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2010년 ISP가 인터넷망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열린 인터넷' 정책을 발표했다. ISP들은 FCC를 연방법원에 제소했지만 FCC는 법적 공방 끝에 2015년 2월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했다.

하지만 FCC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12월 "통신망은 공공재가 아닌 상품"이라며 망중립성 정책을 폐기했다. FCC는 망중립성 폐기 방안이 통과된 뒤 "네트워크를 공공재로 취급하는 규제가 광대역 투자를 침체시켰다"며 "5G 네트워크로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통신사 등 ISP들은 구글, 넷플릭스 등 인터넷·콘텐츠 기업을 대상으로 사용량, 속도 등에 따라 요금을 차별화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망중립성은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움직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보 접근의 평등을 강조하며 망중립성 원칙을 지킨 데 반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망중립성이 기업 간 경쟁을 저하시킨다며 이를 폐지했다. 이번에 집권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방식으로 바꿀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다.

쟁점은 소비자 권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통신망 사용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PC 혹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지, 제공하는 콘텐츠가 영상인지 이미지인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쟁점은 "콘텐츠 제공기업이 통신망을 타 기업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면 더 많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가"이다.

망중립성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인터넷 통신망이 공공재가 아니라 정보 서비스이며 통신망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자율주행과 같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달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망중립성에 찬성하는 측은 인터넷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돼야 하며 모든 트래픽은 공평하게 처리해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편다.

망중립성 원칙은 소비자 권리와도 직결된다. ISP가 통신사에게 망사용료를 받는다면 소비자가 내는 통신비용과 콘텐츠 이용요금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한양대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장인 이상욱 교수(철학과)는 이날 세미나에서 "서비스 안정화 법이나 발신자 종량제 같은 법이 국회에서 입법되려 하는데 이는 국가 간 데이터 교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들 역시 해외 콘텐츠를 접하는 시대인데 발신제 종량제 도입시 다양한 데이터 흐름이 방해될 수 있다"고 짚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