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에 밀려 변방으로 인식됐던 한국 백신 기업의 기술력과 ‘K바이오’의 저력을 확인해 준 사건이다.”

바이오 투자 전문인 노승원 맥쿼리투신운용 펀드매니저는 21일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영국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와 맺은 백신 후보 물질의 글로벌 공급 계약을 이같이 평가했다. 노 펀드매니저는 “진입 장벽이 높고 몇몇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글로벌 백신 시장을 업력이 10여 년으로 짧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뚫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글로벌 백신 생산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다른 회사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생산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익률 50% 황금알 사업

SK,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수탁 생산
SK바이오사이언스는 연간 1억5000만 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완료돼 상업화되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생산할 제품은 주로 국내와 아시아 지역에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의 선제적 투자가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12년 경북 안동에 백신 생산 공장을 지어 2013년부터 본격 가동했다. 지난해 가동률은 70%대다. 가동률 90%를 넘는 국내 경쟁사들보다 낮은 가동률이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세포 배양 방식의 백신 생산 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이번 계약에 도움이 됐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도 세포 배양 방식이다. 국내 백신 1위 기업인 GC녹십자는 유정란을 이용한 백신을 만든다. 생산 방식이 다르면 설비 투자를 새로 해야 하는 데다 생산 노하우도 없어 진입엔 시간이 걸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수탁 생산 계약을 따낸 여섯 번째 회사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달 8일엔 영국 정부의 백신생산혁신센터와 영국 및 유럽에 공급할 제품 생산 계약을 맺었다. 미국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스와는 미국 시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 다이이치산쿄는 일본 내 생산을 맡는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백신 생산 기술력과 신뢰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역할도 컸다. 보건복지부 등은 일찌감치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단을 꾸리고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협상을 중재했다.

이번 계약으로 이 회사 매출도 껑충 뛸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기업 등과 체결한 백신 가격은 병당 5000원 안팎이다. 노 펀드매니저는 “코로나19 백신은 매출 총이익률이 50%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억5000만 병을 생산할 경우 매출은 7500억원에 이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효과 확인”

본격적인 백신 생산은 임상 2·3상 진행 경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임상은 우선 순항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브라질 등에서는 임상 2·3상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임상 3상을 준비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 공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란셋’에 발표한 임상 1·2상 결과에 따르면 백신을 투여한 참여자 전원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항하는 T세포가 활성화됐다. 18~55세 성인 1077명을 대상으로 약 절반에 해당하는 543명은 AZD1222를, 534명은 뇌수막염 백신(MenACWY)을 접종한 결과다. 투약 인원의 90% 이상에서 중화항체도 생겼다.

화이자와 바이오앤테크가 공동 개발중인 코로나19 백신인 ‘BNT162b1’도 독일에서 진행한 임상 1·2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성인 60명 대상 임상 참여자에게서 코로나19를 회복한 사람보다 최대 3.2배 많은 중화항체가 확인됐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억 명 분량, 화이자는 13억 명 분량의 백신을 제조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국내 다른 백신 회사들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우섭/최지원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