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이 19일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인비전 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제공.

이지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이 19일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인비전 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제공.

"기술 트렌드가 너무 빨라서 나도 잘 모르는 게 많으니 앞으로는 '배운다는(Learning)' 자세로 회의를 바꿔봅시다."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세 번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사티아 나델라(사진)는 매년 MS의 핵심인력 300명만 모이는 최고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PC 시대 강자에서 모바일 시대에 뒤처졌던 MS의 조직문화 대변혁 '신호탄'이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19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인비전 포럼'을 열고 MS의 조직 문화 개선과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AI) 등 사업구조 디지털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를 발표했다.

이지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나델라 CEO의 인식 전환을 거론하며 "MS가 사업구조와 조직문화를 바꾸며 다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75년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창립한 MS는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윈도우', 사무용 프로그램 워드·엑셀 같은 '오피스'로 20년 넘게 세계 최고 IT(정보기술) 기업으로 군림했다. 최고 수준 엔지니어 인재들도 MS로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1등주의'가 회사 분위기로 자리잡았다.

이같은 MS의 1등주의는 부작용을 수반했다. 다른 기업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윈도우와 오피스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며 현재의 1등에 안주했다.

위기는 2000년대 찾아왔다. 모바일 시대로 바뀌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MS는 벼랑으로 내몰렸다. 윈도우와 엑셀은 '가볍고 편리하게' 쓰고 싶어하는 모바일 이용자들의 니즈(필요)를 맞추지 못했다.

2004년만 해도 PC 운영체제를 장악한 MS는 애플보다 매출이 4배 많았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격차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아이폰은 모바일 시대의 '완벽한 대응'으로 평가 받았다. 2011년 안드로이드, iOS 등 모바일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올 때도 MS는 "스마트폰은 PC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은 MS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MS는 2013년 뒤늦게 핀란드 스마트폰 제조사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문을 7조9800억원에 인수했다.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어 그 안에 MS의 OS를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iOS와 안드로이드로 넘어간 뒤였다.

PC 시대에선 1등 개발자였던 엔지니어들도 모바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MS는 결국 노키아 인수 2년 만에 단말기 제조 사업을 포기했다. 스티브 발머 전(前) MS CEO가 "모바일 시장의 대처가 늦은 점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변화는 2014년 찾아왔다. 나델라 CEO가 취임한 후 목표를 새롭게 설정했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모바일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돕는 역할'을 자임했다. 이들 '데이터 기업'이 필요한 건 클라우드였다. MS의 자산인 여러 소프트웨어(SW)를 클라우드로 연결하면 고객사들이 더 편리하고 쉽게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MS는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로 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했다. 단순히 데이터 저장 공간만 빌려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윈도우, 오피스 등 통합 SW를 제공하며 아마존 같은 클라우드 경쟁사와 차별화했다. 전세계에 수많은 데이터센터를 세우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MS는 1등주의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고객사에 다가갔다. 이지은 부사장은 "기업들에 윈도우와 오피스 사용 계약을 갱신하며 수익을 냈던 시대엔 있을 수 없던 일"이라고 했다.

미국 통신기업 AT&T, 삼성전자와의 대형 계약 체결이 대표적 사례다. MS는 지난 7월 AT&T와 클라우드,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등 첨단 IT 기술 분야에서 전략적 협업을 하기로 했다.

경쟁사보다 빠르게 5G와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하고 싶었던 AT&T였지만 200조원에 달하는 장기부채가 걸림돌이었다. MS가 '솔루션'을 제시했다. 과거처럼 장기계약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매달 돈을 지불하는 '구독' 방식을 제안했다. AT&T로선 당장 큰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MS 역시 사업 근간을 클라우드로 바꾼 터라 가능했다.

삼성전자에도 솔루션을 제공했다. 연간 3억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하는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전자기기 제조기업이지만 그 안에 넣을 SW에선 애플에 밀렸다. 맥 OS 운영체제로 PC(맥)-노트북-스마트폰-웨어러블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공고히 구축하는 애플을 삼성은 지켜만봐야 했다.

MS와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전략적 협업 관계를 선언했다. 삼성전자 기기에 MS의 SW를 심어 애플에 맞서는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게 골자였다. 예컨대 이제 삼성의 스마트폰과 윈도우PC를 연동하면 PC와 스마트폰을 오가지 않고도 스마트폰 화면을 PC에서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메시지를 PC에서 확인하는 것도, PC에서 메시지의 답장을 보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나델라 CEO는 조직문화도 바꿨다. MS는 각 분야 1등 기술자들이 모이는 회사다. 이들이 참여하는 회의시간에서 비효율이란 납득되지 않았다.

강희선 마이크로소프트 아태본부 최고학습책임자(전무)는 "질문 하나, 대답 하나도 잘 못하면 바로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나델라 CEO는 본인이 먼저 "모르는 게 많다"고 했고, "배워가면서 해보자"라고도 했다고.

나델라 CEO가 취임 후 스스로를 '문화 큐레이터'라고 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MS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내 문화가 먼저 바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개인 성과 위주였던 인사평가시스템도 협업을 통해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부사장은 "과거 MS는 '엘리트 인재 한 명이 회사를 먹여살린다'는 분위기가 지배하던 곳이었다. 이젠 부서간 협업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쪽으로 회사 체계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MS는 지난해 애플을 제치고 한때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 윈도우로 PC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했던 2002년 이후 16년 만의 '부활'이었다. 그 사이 MS가 새로운 먹거리로 키웠던 클라우드 사업은 전체 매출(120조원)의 36%에 달하는 44조원 규모로 커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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