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2부>
(3·끝) 대학 수학교육의 혁신가들

학생들이 특정 주제 놓고 토론
원리 알면 계산은 컴퓨터로 해결
서울대 수리과학부는 올해 사상 최초로 토론수업을 도입했다. 일방적 판서 강의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물리천문학부, 통계학과 학생들도 함께 이수하는 ‘미적분학2’ 등 총 12개 강의를 개설했다. 강의명만 보면 전공 같지만, 사실 조각난 고교 수학을 감안해 기초지식을 다시 쌓는 과정이다.

오병권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은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의 기본인 선형대수(행렬·벡터)를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데 커리큘럼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 이전의 수학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전문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물리천문학부·통계학과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교내 잔디밭(버들골 풍산마당)에서 올해 처음 도입된 토론식 수학수업(미적분학연습2)에 참여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서울대 수리과학부·물리천문학부·통계학과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교내 잔디밭(버들골 풍산마당)에서 올해 처음 도입된 토론식 수학수업(미적분학연습2)에 참여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코딩으로 수학하자’

이상구 한국수학교육학회장(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은 ‘코딩수학’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파이썬, R 등 프로그래밍 언어와 수학을 동시에 배우는 선진 수학 교육기법이다. 예를 들어 적분을 계산할 때 함수의 그래프와 축 간 넓이를 무한대로 쪼개 합하는 ‘구분구적법’의 원리를 알았으면, 이후 복잡한 계산은 코딩에 맡기는 것이다. 이 회장은 수업시간에 기본 코드만 공개한 뒤 나머지는 학생들이 토론하며 자유롭게 수업 내용과 코딩을 연결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 2학기 ‘인공지능을 위한 기초수학’ 과목을 처음 개설했다. AI 이해에 필수적인 선형대수, 다변수 미적분학 등으로 구성했다.

이 회장은 “복잡한 수식과 문제만 강요하면 학생들은 곧 포기하고 중요한 개념마저 잊어버린다”며 “차라리 그 시간에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교 수학에서 행렬이 완전히 사라지고, 벡터도 반쪽으로 쪼개져 향후 수능에서 누락되는 부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 회장은 “구글 검색엔진의 시초도 행렬의 고유값(아이겐밸류)과 아이겐벡터 연구에서 시작됐다”며 “여러 사회문제, 경영 난제도 선형대수를 활용하면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행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최초 수학자다.

2019년 제60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단장 송용진 인하대 교수·뒷줄 가운데).

2019년 제60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단장 송용진 인하대 교수·뒷줄 가운데).

문제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올해로 22년째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소리없이 무너져온 공교육 속에서 한국 수학영재들의 명성을 그나마 지키고 있다. 올해 대표단(서울과학고생 6명)은 지난 7월 영국에서 열린 제60회 올림피아드에서 역대 최고점인 총점 226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공동 1위인 미국과 중국(227점)에 1점 차로 밀렸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전 과정은 산 너머 산이다. 1년 내내 아시아태평양올림피아드, 루마니아수학마스터대회 등 국내외 6개 시험을 치러 대표단 6명을 뽑는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시험은 대수, 기하, 정수, 조합 등 4개 영역에서 치러진다. ‘천재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고난도 순수수학인 위상수학을 전공한 송 교수는 기하를 대표단에 가르친다. 국내외 다양한 기하 문제를 두고 전형적 답안과는 다른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며 학생들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송 교수는 “교육과정을 줄여봤자 그만큼 사교육만 늘어나기 마련”이라며 “교과서 검정 체제를 폐지하고 교육과정을 다변화해야만 수학 공교육이 살아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딥러닝 모르면 ‘연구소 입소 불가’

국내 손꼽히는 AI 전문가인 강명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석·박사 통합과정 제자 40여 명과 함께 10여 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서울대 ‘수치계산 및 영상분석연구소(NCIA)’는 선형대수, 수치 해석, 파이썬 등 딥러닝 관련 기본소양을 갖춘 학생만 입소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강 교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생활건강, 네이버 등 다수 기업은 물론 정부, 공공기관 등과 협력연구를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의 인기 비결은 순수하게 실력이다. 딥러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스탠리 오셔 미국 UCLA 교수가 강 교수의 지도교수다. 수학자로서 영화 컴퓨터그래픽(CG) 기술 고도화에 기여한 공로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은 론 페드큐 미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그의 대학원 동기다. 1996년 오셔 교수로부터 함께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교수는 “사방에서 AI를 논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건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성과를 내는 AI 원천기술을 구현하려면 선형대수, 수치 해석 등 핵심 수학에 대한 집중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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