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명 全직원을 4000여개 스타트업으로 쪼갠 中 가전업체 하이얼
최근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문화를 조직에 이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느린 의사결정과 과도한 위험 회피 성향 등 관료주의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스타트업 삼성’을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직원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조직을 세분화하는 한편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한다. 부장, 차장 등의 직급을 없앤 것도 스타트업식 수평적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어떻게 분화시켰나

중국엔 기업 조직 전체를 스타트업으로 쪼갠 사례가 있다. 중국 가전업체로는 해외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하이얼이다. 중국 내에서만 5만 명을 고용한 하이얼은 전체 직원을 4000여 개의 스타트업으로 재배치했다.

소기업을 뜻하는 중국어인 ‘샤오웨이(小微)’로 불리는 하이얼의 스타트업은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된다. 공장 생산조직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샤오웨이도 100명을 넘지 않는다.

샤오웨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인큐베이팅 소기업으로 불리는 ‘부화(孵化) 샤오웨이’다. 하이얼이 기존에 전혀 하지 않은 사업을 시도하는 조직으로 스타트업 본연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조직이다. 성공 확률이 낮은 아이템을 시도하는 만큼 전체 샤오웨이 중 가장 적은 50여 개에 불과하다. 게임 업체인 선더로봇, 신선식품 배달업체인 신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다음은 하이얼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전형(轉型) 샤오웨이’다. 가전 분야의 경쟁력을 토대로 시장을 장악하는 분야로 200여 개의 샤오웨이가 있다. 하이얼의 와인 냉장고를 토대로 주류 유통업에 진출한 지우쯔다오, 도시 지역의 젊은 소비자에게 특화한 냉장고를 개발한 쯔셩 등이다.

나머지는 ‘생태(生態) 샤오웨이’로 생산, 연구개발, 유통, 인사, 회계 등 부화 샤오웨이와 전형 샤오웨이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조직이 해당된다. 각 업무분야의 직원은 10여 개에서 많게는 수십여 개로 쪼개진 샤오웨이에 소속돼 있다. 부화 샤오웨이와 전형 샤오웨이는 생태 샤오웨이에서 자신들에게 알맞은 샤오웨이를 선택해 성과를 공유한다. 청년층 특화 냉장고의 쯔셩이 생산 관련 생태 샤오웨이 중 A샤오웨이를 선택하면, A샤오웨이는 쯔셩의 냉장고를 생산하며 판매에 따른 이익을 나눠 갖는다. 생태 샤오웨이들이 부화 샤오웨이나 전형 샤오웨이의 실적과 시장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실적에 문제가 생기면 더 의욕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

하이얼 내 생태 샤오웨이에서 필요한 기술이나 생산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부 업체와 계약해도 된다. 조직을 샤오웨이로 분화하며 하이얼이라는 기업과 직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자원 집중은 어떻게 하나

이 같은 설명만 들으면 대형 제조업체로서 필요한 대규모 투자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샤오웨이의 필요만 해결하고 있으면 생산라인을 업그레이드하거나 가전 분야의 핵심 기술을 개발할 수 없어 가전업체로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얼이 샤오웨이와 함께 도입한 게 플랫폼이다. 각 샤오웨이는 연관성에 따라 하나의 플랫폼 안에 묶인다. 플랫폼에는 플랫폼 책임자와 소수의 지원조직이 있어 플랫폼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투자를 한다. 예를 들어 쯔셩과 지우쯔다오는 냉장고 플랫폼 안에 속한다. 냉장고 플랫폼 안에서 각 샤오웨이가 어떤 사업을 하고 누구와 짝짓기할지는 전적으로 각 샤오웨이의 결정에 따른다. 누구를 샤오웨이에 포함시키고 급여는 어떻게 책정할지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대신 공장 지능화를 어떻게 추진하고, 어떤 원천기술에 투자할지는 플랫폼 책임자가 결정한다.

물류 플랫폼으로 바뀐 하이얼의 물류 조직이 대표적이다. 기존 물류 조직은 하이얼이 생산한 제품을 국내와 해외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전환 뒤엔 9만 명의 독립사업자와 배송 스타트업을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하이얼 내의 샤오웨이라도 하이얼 물류 플랫폼 내 샤오웨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부 샤오웨이를 선택할 수 있다. 물류 플랫폼 역시 플랫폼 차원에서 하이얼 외부의 주문을 수주할 수도 있다.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업체 톈마오의 물류 일부를 하이얼 플랫폼이 담당하게 된 이유다.

5만명 全직원을 4000여개 스타트업으로 쪼갠 中 가전업체 하이얼
물류 플랫폼의 책임자인 장융양은 “과거에는 소속 배송기사를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면 지금은 플랫폼이 하이얼 안팎의 고객에게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지를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1984년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이 칭다오의 국영 냉장고업체를 맡으며 “공장 내에서 아무 데나 볼일을 보지 말라”고 지시한 지 30여 년 만에 하이얼은 세계 어떤 대기업도 하지 않은 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올해 만 70세인 장루이민의 혁신정신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