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도쿄증시 재편 영향으로 일본 상장기업의 경영진과 임직원이 발행 주식을 모두 인수해 상장폐지시키는 경영자인수(MBO)가 크게 늘고 있다.

12일 일본의 기업 인수합병(M&A) 자문사인 레코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4~9월) 동안 MBO 방식으로 상장을 폐지했거나 폐지할 예정인 기업이 모두 11곳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에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MBO를 통해 상장을 폐지하는 기업은 2011년 21곳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레코프는 코로나19 여파로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MBO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경영진의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면서 주주들의 간섭을 피해 경영의 자율성을 높이려는 기업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MBO를 통해 비상장사가 되면 단기실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업을 재편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상장기업일수록 일단 비상장사로 돌아간 뒤 사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해석이다.

레코프 관계자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도시바 경영진과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의 격렬한 대립을 계기로 상장 폐지의 장점을 눈여겨보는 기업 경영진이 많아졌다”고 했다.

내년 4월부터 도쿄증시가 4개 시장 체제에서 3개 시장 체제로 재편되는 것도 MBO가 급증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 시장’에 편입되려면 유통주식 비중이 35% 이상이고, 사외이사의 3분의 1 이상을 여성 및 외국인으로 채워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한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1부시장 상장기업 2191곳 가운데 30.3%인 664곳이 프라임시장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 이처럼 상장을 유지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비용이 불어나면서 상장 폐지를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