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에 싫증 난 클라리넷 연주자, 커피 볶는 취미 살려 '손수레 노점'

창업비용 단돈 600달러
2002년 식당 부엌 한쪽 빌려 로스팅 기계 놓고 커피 개발
손수레 끌고 핸드드립 커피 팔아

한 번 맛보면 줄서기
친구집 차고에 첫 매장 열어, 벤처인·유명인사 줄줄이 단골
실리콘밸리 거물들 잇따라 투자

"커피산업 제3의 물결"
철저한 장인정신과 완벽주의로 미국·일본에 30개 매장 직영
한국·태국·홍콩서도 곧 개업
[Global CEO & Issue focus]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맛 끝내준다" 입소문에 글로벌 대박

지난해 9월25일, 세계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가 하나의 소식에 들썩였다. 커피 전문점 업체 ‘블루보틀(Blue Bottle) 커피’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7500만달러(약 835억원)를 유치했다는 뉴스였다. 블루보틀은 2012년 2000만달러를 시작으로 2014년 2500만달러, 이듬해 7500만달러 등 지금까지 1억9500만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식음료업체로는 이례적으로 큰 투자금이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하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가치를 인정받은 점이 더 이목을 끌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파란색 병 모양 심벌이 눈에 띄는 블루보틀은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스타벅스를 능가할 커피라고도 한다. 블루보틀을 창업한 사람은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인 제임스 프리먼(50)이다.

고집스러운 장인정신

교향악단 클라리넷 연주자이던 프리먼 블루보틀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해마다 10만㎞씩 순회공연을 다녔다. 2001년 그는 큰 고민에 빠졌다. 연주를 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돌며 공연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프리먼은 공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도 손수 볶은 커피 원두를 들고 다니며 뜨거운 물을 요청해 내려 마셨을 정도로 커피 애호가였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커피사업에 뛰어들었다.

2002년 600달러를 들여 샌프란시스코 북쪽 오클랜드에 있는 식당의 부엌 한쪽을 빌렸다.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팅 기계를 장만한 뒤 하루종일 몇 초 간격으로 로스팅 시간과 온도를 달리하며 자신만의 커피 개발에 몰두했다. 손수레에 직접 만든 커피 추출기를 싣고 근처 농산물 직거래 장터(파머스 마켓)로 나갔다. 손님이 주문하면 60g씩 커피를 저울에 달아 94도로 물 온도를 맞춘 핸드드립 커피를 팔았다.

당시는 스타벅스가 미국에서 최고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커피를 주문하면 몇 분 만에 나오는 것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먼의 커피를 한 번 맛본 사람은 다시 찾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손수레 앞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커피업계에 혁명을 일으키다

블루보틀 커피의 출발은 애플처럼 보잘것없었다. 프리먼은 2005년 샌프란시스코 해이즈밸리의 친구 집 차고에 첫 매장을 열었다. 블루보틀의 시작이었다. 여섯 종류의 ‘스페셜티 커피’를 팔았다. 단일 품종으로 만든 고품질 커피인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향과 맛이 다양한 만큼 종류에 맞는 로스팅과 블렌딩, 색다른 추출 기법으로 차별화했다.

블루보틀은 뛰어난 커피 향과 맛으로 입맛 까다로운 샌프란시스코의 젊은 벤처기업인들을 사로잡았다. 록그룹 U2 보컬인 보노 등 유명 인사들도 단골이 됐다. 입소문을 타고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구글벤처스, 트루벤처스, 모건스탠리, 피델리티 등의 투자가 이어졌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에번 윌리엄스와 잭 도시 CEO,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투자자들은 프리먼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에 주목했다. 성공한 IT 기업 창업자에게서 볼 수 있는 완벽주의와 세부사항에 대한 집착이 프리먼에게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혁신적인 기업을 발굴할 때 사업 분야보다는 창업자의 마인드를 더 중시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스타벅스가 마이크로소프트라면 블루보틀은 커피업계의 애플이라 할 수 있다”며 “블루보틀이 커피산업에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음식의 보조 음료로 마시던 커피에서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기업화된 전문점 커피에 이어 부상한 ‘빅트렌드’란 설명이다.

모든 매장 직접 운영

프리먼은 가맹점(프랜차이즈)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와도 아직 가맹점을 내지 않고 있다. 블루보틀은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 25개와 일본 도쿄 5개 등 30개 매장을 직영하고 있다. 직원도 직접 채용한다. 바리스타들은 프리먼 앞에서 여러 번 커피를 추출한 뒤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블루보틀은 ‘다도(茶道)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도쿄에 문을 열자 시민들은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네 시간씩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프리먼은 경쟁이 치열한 커피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베이커리인 타르틴 베이커리를 인수했다. 조만간 한국, 태국,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 새로 매장을 열 계획이다.

블루보틀이 애플과 비교되는 이유는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소비자의 충성도와 더불어 ‘새로운 경험과 문화를 판다’는 이미지가 닮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블루보틀은 커피 품질을 포기하거나 대규모 공장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소비자의 기호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고급 커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블루보틀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리먼 창업자가 장인정신을 잃지 않고 블루보틀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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