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시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경제성장 위해 실용주의 선택할 것"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기존 정치권 밖의 인물이었기에 다가올 트럼프 시대를 불안해하는 시각이 많다. 그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쏟아낸 거친 막말과 대내외 공약이 1차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미국 월가의 투자 구루와 경제 석학, 유명 정치컨설턴트는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내다볼까. 이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다. 내년 1월20일(현지시간)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가 “과격하고 극단적인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취임 초기 경제 성장을 국정운영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의회와 타협해 경기부양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과격한 포퓰리즘은 선거용 공화당의 경제정책 따를 듯"

[미국 트럼프 시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경제성장 위해 실용주의 선택할 것"
“과격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대신 실용적인 중도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사진)는 트럼프 정부 성향을 이렇게 내다봤다. 그는 기고 전문 사이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올린 ‘트럼프의 순치(taming)’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유세 과정에서 보여준 극단적 모습과는 전혀 다른 국정운영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선거공약만 놓고 보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중국에 대한 고율의 보복관세 부과, 수백만명의 불법이민자 강제 추방으로 글로벌 경제를 공포로 몰아가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과격한 정책이 동맹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경쟁국과의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당선자가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정책을 추구하면서 ‘협상의 달인’이라는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루비니 교수는 “포퓰리즘 정책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적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정책으로는 감세와 규제 완화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공화당이 수십년간 선호해 온 공급주의 경제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행정부의 의사결정 과정도 리스크와 보상이라는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대통령에게 제한된 선택을 준다”며 “트럼프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처럼 (독단적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자문그룹에 더 의존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의회 다수당 공화당 지도부도 통상과 이민, 재정적자 문제 등 주요 이슈마다 그가 중도적인 입장에 서도록 압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를 압박하는 최대 견제세력으론 시장을 꼽았다. 과격한 정책은 주가 폭락과 달러 가치 하락, 금값 등 안전자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즈니스 친화적인 중도 정책을 시행하게 시장이 유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이머징마켓그룹 회장 "미국-중국 무역전쟁 가능성 낮아…패닉에 빠질 필요 없다"

[미국 트럼프 시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경제성장 위해 실용주의 선택할 것"
“패닉에 빠질 필요 없다. 미국과 중국 간 통상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신흥시장 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이머징마켓그룹 회장(사진)의 전망이다. 모비우스 회장은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중국의 문을 더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에는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럴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트럼프는 훨씬 현실적인 비즈니스 차원에서 중국과 협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비우스 회장은 전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글로벌 시장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상당 기간 변덕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과격하게 말한 내용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선 결과가 나온 뒤 나흘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 지수는 6.9% 떨어졌지만 상하이종합지수가 오히려 2% 오른 점에 주목하라고 했다.

모비우스 회장은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비관적인 전망과 공포를 얘기하고 있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을 감안하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 당선자가 다른 국가와의 협상을 편안하게 느낄 것이고, 양측 모두를 만족시키는 무역과 투자협정을 이끌어낼 것으로 본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가 공언한 대로 미국 경제가 강건한 성장을 달성한다면 멕시코를 포함한 신흥시장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서프라이즈’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어 단기 변동성에 휩쓸리지 말고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CEO "레이건 시대로의 회귀…글로벌화는 퇴조"

“글로벌화의 후퇴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미국 트럼프 시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경제성장 위해 실용주의 선택할 것"
운용자산이 15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레이 달리오(사진)는 트럼프 시대를 불안한 시각으로 전망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글로벌 비즈니스인맥사이트 링크트인에 올린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레이건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데올로기의 전환”이라고 규정했다.

달리오 CEO는 이전 시대를 △글로벌화에 따른 자유무역 증가 △재정정책 약화 △미약한 경기와 저물가로 정리했다. 지금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지나 1980년대의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으로 돌아선 상황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시대는 △글로벌화와 자유무역의 퇴조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경제 성장과 고물가 체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약 30년간 이어져 온 채권 강세장이 끝났다고 분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중대한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앞으로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10여년간 거대한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리오 CEO는 이런 전환의 과정에서 큰 혼란도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포함해 다른 중앙은행들이 긴축정책을 강화하면서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충돌이 언제 ‘합선’을 일으켜 시장을 다치게 할 것인지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달리오 CEO는 초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트럼프의 ‘경제 브레인’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구체적인 이름은 거론하지 않은 채 “이들은 경제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며 “분별없이 어리석은 정책을 펼쳐 경제를 나락으로 처박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테리 헤인즈 에버코어 선임정치전략가 "감세·인프라 투자로 취임 8개월 내 승부수"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와 국정운영이 별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국 트럼프 시대] "트럼프는 협상의 달인…경제성장 위해 실용주의 선택할 것"
뉴욕 월가의 대표적 기업 인수합병(M&A) 자문회사이자 컨설팅회사인 에버코어의 테리 헤인즈 선임정치전략가(사진)는 ‘대통령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뉴욕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감세와 대대적인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경제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취임 8개월 안에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회가 대통령의 독단적 정책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만큼 여당인 공화당과 쉽게 합의 가능한 경제 성장 정책과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시스템 관련 법 폐지를 우선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자신의 국정운영 능력을 입증하고 지지 기반도 확충해 나가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경제 분야는 △법인세를 40%에서 15%로 파격적으로 인하하고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오도록 하며 △앞으로 3년간 매년 1000억달러를 인프라 개선에 투자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했다.

헤인즈 전략가는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재정 악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 놓은 수익을 환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가 의회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적으로 주요 교역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보복관세 부과 등 과격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이나 기존에 체결된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면 폐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반대한 만큼 폐기 절차를 밟을 것으로 관측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