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자체 증거를 제시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계기로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 지지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6일 세르지오 비에이라 드 멜루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HR)과의 면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등에서 "이라크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며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유엔의 동의없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들은 유엔안보리의 이라크 전쟁 결의에 대한 비토 가능성까지 시사했던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지지 쪽으로 미묘한 방향 선회를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시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정부의 최대 지지언론이라고 볼 수 있는 '르 피가로'는 6일자 사설에서 프랑스가 "포도주에 물을 탔다"며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프랑스의 강력한 반대입장이 희석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르 파리지앵'은 5일 안보리 회의에서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으며 프랑스는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친구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한 도미니크 드빌팽 외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프랑스가 전쟁 쪽으로 한발 다가섰다"고 말했다. 드 빌팽 외무장관은 6일에도 파월 장관이 제시한 정보에 "놀랄만한 것은 없다"며 이라크 사찰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2차 유엔결의를 통해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내 국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 프랑스가 유엔의 이라크 전쟁 결의안을 비토하거나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불참하는 등 이라크 위기 해법을 놓고 최후의 순간까지 미국의 반대편에 설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별로 없다. 실제로 시라크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일방적 이라크 공격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유엔이 승인하는 경우 이라크전에 동참할 수 있다는 여지를 배제하지 않았다. 일례로 그는 연초 군과의 신년 하례회에서 "군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라크전 참여 가능성을 시사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프랑스군은 이라크 전쟁 참여에 대비해 무기체계가 미국측 무기들과 양립할 수 있도록 긴급 점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일한 핵 항공모함인 샤를 드 골호를 이라크 전쟁 대비중인 미 항모 해리 트루먼호와의 공동 군사훈련에 참여시켰다. 프랑스가 유엔의 이라크 전쟁 결의에 비토권 행사를 시사하는 등 이라크 전쟁반대 입장을 강화한 것은 지난달 파리에서 열렸던 독일과의 정상회담 전후다. 이라크 전쟁 반대를 위한 불-독 공동전선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의 "늙은 유럽" 비난으로 이어졌으며 프랑스, 독일 등 전통 우방의 '비협조'에 대한 미국측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시라크 대통령은 미국에 대항해 국제사회의 이라크 전쟁 반대론을 주도하면서 국내 반전론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파월 미국무장관이 주도한 유엔안보리 회의를 기점으로 국제사회에서 이라크 전쟁 불가피론이 힘을 얻기 시작하자 프랑스는 그동안 표방해온 전쟁반대론에 다시 미세한 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 여부가 판가름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프랑스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논리를 내세울지 주목된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