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글러브"는 겨울철 폴란드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갑의 브랜드이다.

폴란드내 장갑수요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있는 이 장갑은 바로
한국인 기업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주)성부트레이딩(사장 차진영)이 그 주인공으로 지난 92년 현지에 공장을
건설, 지금까지 털장갑을 생산하고 있다.

폴란드는 대우 현대 등 대기업의 진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지만
사실 폴란드의 제조업 분야에 맨처음 진출한 한국기업은 바로 성부트레이딩
이다.

연매출 7백만달러 규모의 성부가 폴란드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

막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선 폴란드에 한국의 "보따리장사"들이 대거 몰려
들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값싸고 실용적인 한국의 털장갑은 폴란드에 선보이자마자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년여간 수입판매에 열중하던 차진영 사장(48)은 현지에 진출해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 92년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국과 수교한지 얼마안된 폴란드는 과감한 투자를 하기에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험과정에 있는데다 현지시장 환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고심끝에 차사장은 폴란드측 파트너와 함께 공장을 설립하는 합작투자
형태를 선택했다.

합작 파트너로는 90년부터 꾸준히 거래를 해오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폴란드의 수입상 보구스와프 옵스트씨를 선정했다.

차사장은 곧바로 옵스트씨의 고향이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20km 떨어진
헤움에서 현지생산에 들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장안에는 기계 10대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시작한지 5년만에 기계수는 1백대, 고용인 1백30명, 연간 생산량
7백만켤레의 폴란드내 최대 털장갑 생산공장으로 성장했다.

폴란드 털장갑 시장의 점유율은 50%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성부 전체 생산량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구소련지역 동유럽 스웨덴 영국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성부는 이같은 눈부신 성장을 바탕으로 지난 94년에는 실업률이 높은
헤움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헤움지역 "베스트 컴퍼니"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차사장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초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산원료의 현지화.

신축성이 뛰어나 어른부터 아이까지 사이즈를 통일시켜 "매직글러브"라고
불리는 이 털장갑을 생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료의 현지 공급이었다.

그러나 당시 폴란드에서는 이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이 없었다.

차사장은 근교의 원사생산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매직글러브용 원사를
생산, 공급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 수요가 없던 새로운 종류의 원사생산을 업체들이 선뜻
결정할 리가 없었다.

차사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업체들을 설득, 마침내 원사조달
현지화에 성공했다.

지금은 70%이상의 재료를 폴란드에서 조달하며 폴란드의 기술로 아직
생산이 불가능한 재료만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성부는 이처럼 원사의 현지화에 성공한 덕으로 지금은 동유럽은 물론
서유럽 지역에도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차사장은 성공의 가장 큰 비결로 "인간관계"를 꼽는다.

신의를 바탕으로 생겨난 국경과 문화를 뛰어넘는 우정이 초기 창업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차사장은 한걸음 더나아가 한국과 폴란드의 직원간 교류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우수 폴란드 직원의 한국관광이나 폴란드 공장의 망년회에 한국직원들
참여 등을 계획하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제조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차사장의 지론이다.

"폴란드인들의 기술습득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상주하던 한국인 기술자들이 2년만에 기술전수를 마치고 철수했습니다만
오히려 한국산보다 품질이 더 우수합니다"라고 차사장은 자랑한다.

< 바르샤바=김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