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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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지인들 모이면 하는 말이 '가치투자'는 곧 "같이 죽자"랍니다."

직장인 A씨의 푸념이자 최근 들어 심화한 테마주 장세에 피로감을 느낀 개인투자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A씨는 "예전엔 최소 6개월 이상의 가치투자를 선호했지만, 지금과 같이 변동성이 큰 장세에선 올랐다 싶으면 팔아치우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며 "자문사, 운용사 지인들도 가치주에 예전만큼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변동성 장세 속 테마주 급등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치주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외 불확실성에 지수 방향성에 대한 베팅이 어려운 가운데 테마주를 찾는 움직임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게 증권가 전망이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들어(8월1~23일) 국내 주식시장 수익률 상위권에는 초전도체, 맥신 관련 종목들이 줄지어 올랐다. 상승률 1위는 초전도체 관련주 신성델타테크다. 이 기간 수익률이 220%에 육박했다. 이어 맥신 테마주로 분류된 휴비스가 수익률 150%로 2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파워로직스(초전도체) 69%, 코닉오토메이션(맥신) 55% 등 대부분의 초전도체·맥신 관련주가 크게 뛰었다.

"나만 놓칠 수 없지"…테마주로 몰리는 관심

상반기 이차전지 광풍에서 시작한 테마주 열풍은 초전도체, 맥신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수급 쏠림에 의한 '반짝 급등'에 그치면서 단타 거래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나만 돈 벌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이른바 '포모(Fear Of Missing Out·FOMO) 증후군'까지 맞물리면서 가치주 투자에 대한 매력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초전도체·맥신 등 테마 관련 단타 거래는 폭증했다. 이달(8월 1~23일) 신성델타테크의 회전율은 814.46%로 기록됐다. 지난달(7월3~31일)까지만 해도 98.46% 수준이었는데 9배가량 높아졌다. 회전율은 일정 기간 거래량을 상장 주식 수로 나눈 값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손바뀜이 자주 일어났단 의미다. 같은 기간 또다른 초전도체 관련주인 모비스의 회전율은 1400%가 넘는다. 전달의 29.27%보다 약 50배 높다.

일부 운용사들에서도 기존의 전략을 바꿔 테마주로 눈을 돌리는 곳이 늘고 있단 전언이다. 가뜩이나 운용사들은 지난 상반기 예상치 못한 에코프로 급등에 데였던 경험이 있다. 에코프로를 담지 못한 탓에 수익률이 저조해 죄송하단 내용의 운용사 대표의 사과문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나 종목에 대해 운용사나 매니저별로 해석에 차이가 있는 만큼 대응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운용사마다 기본적으로 기존의 콘셉트에 맞춰 투자하거나 운용하겠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테마주 비중을 높이는 등 약간의 다양성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컨셉을 고수하는 하우스를 제외하고는 시장에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비중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테마를 쫓아가는 방식의 운용 전략으로 이같은 장세를 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라 게 전반적인 자산운용업계 주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운용사 대표는 "(저희 하우스의 경우) 독특한 전략을 세우다 보니 업계를 대변할 순 없지만,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기 위해 테마주를 오히려 따라가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테마주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수익률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 하우스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테마주 장세 당분간 지속 전망…변동성 유의"

"요즘 '가치투자'는 '같이 죽자'랍니다"…개미들 푸념
증권가에선 이같은 테마주 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 중국 경기 부진 등 대외적 변수에 지수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단기 차익을 얻기 위한 테마주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단 판단에서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관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코스닥과 테마주의 반등이 돋보인다"며 "그 이유는 대외 불확실성으로 지수 방향성 베팅이 어렵고, 높은 금리로 요구 수익률이 상승한 데다 시장을 주도하는 특별한 호재가 없는 것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테마를 찾는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지수 자체의 방향성이 부재하다 보니 뉴스플로우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테마 간의 수급 이동이 초고빈도로 발생하는 사례가 계속 목격되고 있다"며 "수급 로테이션은 속도가 매우 빠르데다 변동성 또한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자금들이 이슈가 되는 테마들로 단기 움직임을 계속 가져가고 있다"며 "증시 전체가 방향성을 확실히 설정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사례들이 반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급등락이 반복되면서 투자자들의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 상승을 뒷받침할 근거가 불확실한 탓에 테마주 교체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점도 투자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초전도체 테마는 지난달 22일 국내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 'LK-99' 관련 논문을 게재하면서 시작됐지만, 해당 물질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지속되면서 지난 한 달간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다 다시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는 등 급등락을 수차례 반복했다.

초전도체 테마의 하락세가 짙어질 무렵 지난 17일 맥신 소재가 시장의 또다른 테마주로 떠올랐다. 이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팀이 그간의 한계였던 맥신 대량 가능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조준기 연구원은 "기대감과 이슈에 반응해 올라가고 내려가는 성격이 강하다보니 변동성이 크다"며 투자에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