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투신)들이 최근 1개월간 SK그룹주를 적극 사 모으고 있다. SK그룹주는 올해와 내년 실적 개선세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이 많다는 게 운용사들의 설명이다. 그룹 포트폴리오가 4차산업 전반을 아우르고 있어 장기 성장성이 크다는 점도 매수 이유로 꼽힌다.

순매수 상위 10개 중 절반이 SK그룹주

운용사들은 지금 SK그룹株 쓸어 담는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까지 1개월간 자산운용사들이 사들인 순매수 상위 종목 10개 가운데 5개는 SK그룹주였다.

운용사는 지난달 22일부터 전날까지 SK하이닉스를 1150억원어치 순매수해 카카오페이(1767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사들였다. 카카오페이는 신규 상장(11월 3일)에 따른 시가총액 비중 채우기로 볼 수 있다.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대한 운용사들의 선호가 가장 컸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783억원), SK스퀘어(466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453억원), SK텔레콤(396억원)도 10위 안에 들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특정 그룹주에 대한 선호가 뚜렷이 나타난 건 단순 수급이 아니라 전략적 접근의 결과”라고 말했다.

성장성 높게 평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그룹 상장사들의 시총 합계는 지난해 말 172조1433억원에서 이달 22일 기준 202조8229억원으로 30조원 넘게 늘었다. 올해 3개 계열사(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리츠)가 증시에 입성한 게 영향을 미쳤다. SK스퀘어를 떼어낸 SK텔레콤의 시총 감소분(약 10조원)을 반영한 기존 상장사들의 시총 합계는 182조원대다. 상반기 말과 비교하면 오히려 10조원가량 줄었다.

SK는 첨단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 등 4개 분야를 그룹의 중점 사업으로 잡고 2025년까지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그룹별 장기 성장 전략을 보면 SK그룹은 내용이 구체적이고 투자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아직까지 구산업 밸류에이션에 머물러 있던 종목은 저평가 매력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 실적 전망도 나쁘지 않다. 미래 성장성이 높아도 당장 내년 실적 전망이 어두우면 운용사들로선 사들이기 어렵다. SK그룹주 가운데 실적 전망치가 나온 10개 상장사의 내년 영업이익 합계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올해보다 5.8% 늘어난 23조8220억원이다. 10개 상장사 중 실적이 후퇴하는 곳은 없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71.4%), SK네트웍스(33.5%), SK렌터카(20.2%), SK텔레콤(12.1%) 등이 큰 폭의 영업이익 증가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그룹 시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도 실적 전망치가 반등했다. 3개월 전 16조원대였던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1개월 전 12조5702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12조7636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보다 3.3% 증가한 수준이다.

지주사 할인 등 과제도 여럿

운용사들은 다른 SK그룹주를 사면서도 같은 기간 지주사인 SK는 55억원어치 팔았다. 최근 한 달간 2% 떨어졌다. 지주사의 연말 배당 매력을 무색하게 했다.

증권사들은 SK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치에 30%가량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50% 넘는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다. 시장 전반에 지주사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까닭이다. 최근 한 달간 운용사의 집중 순매도로 12% 넘게 빠진 SKC에 대한 우려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동박 사업을 하는 자회사 SK넥실리스가 언젠가 상장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각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