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가 주가 방어를 위해 꺼내드는 자사주 매입 카드가 시장에서 기대만큼 먹혀들지 않고 있다. 자사주 매입 공시를 ‘차익 실현 기회’라고 여긴 투자자들이 오히려 주식을 내다파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통상 호재로 인식되는 자사주 매입이 반대로 작용하면서 공시를 내놓은 상장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자사주 매입' 안 먹힌다…주가방어 미미
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마트는 4000원(3.57%) 떨어진 10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마트는 지난 8월 13일 94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오는 11월 13일까지 장내매수하겠다고 공시했다. 올초 18만원대이던 이마트 주가가 10만원대까지 급락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 소식에도 이마트 주가는 공시 전으로 되돌아갔다. 외국인은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지난 2일까지 1601억원어치 순매도하며 이익을 실현하기 바빴다.

한 증권사 유통업종 애널리스트는 “실적과 성장성 전망이 모두 안 좋은 상황에서 나온 자사주 매입 소식이 오히려 차익 실현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자사주 매입이 반드시 주가에 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같은 유통업종인 현대백화점은 8월 8일 162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뒤 두 달여간 주가가 8% 넘게 올랐다. 하지만 이 기간 외국인은 304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보유 물량을 줄여나갔다.

현대모비스도 지난달 23일 323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공시를 했다. 다음날 4.62% 급등하며 장중 1년 내 최고가인 26만3500원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이후 상승세가 꺾이며 24만2500원까지 내려앉았다. 외국인은 공시 발표 다음날을 제외하고 연일 매도세를 유지하며 총 54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증권사들의 연이은 자사주 매입 효과도 미미하다. 키움증권은 6월 17일 405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시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오히려 18.61% 떨어졌다. 대신증권도 지난달 9일 256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놨다. 이후 주가는 단기에 13.7% 올랐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상태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