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찬 사무금융노조 삼일회계법인지부장. (자료 = 삼일회계법인지부)
황병찬 사무금융노조 삼일회계법인지부장. (자료 = 삼일회계법인지부)
우리나라 최초로 회계법인에서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삼일회계법인지부는 15일 설립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지부장으로 황병찬 씨를 선출했다. 노조 명칭은 'S-Union'으로 정했다.

황병찬 지부장은 "노조 설립의 도화선이 된 것은 근로자대표 선거에 회사의 부당한 개입과 회사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부당함을 향후에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의견이 모아져 사무금융노조 산하 지부로 출범했다"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은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지난 7~9일 동안 3차 투표를 진행했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다. 주 52시간 시행 이후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회사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해야 한다.

해당 투표엔 투표권자 2725명 중 2145명이 투표(투표율 78%)했다. 하지만 출마자가 1258표 득표(투표권자 대비 46%)에 그쳐 당선되지 못했다. 삼일회계법인의 근로자 대표에 당선되기 위해선 투표권자의 과반 찬성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자 대표가 회계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선출되지 못했다고 노조 측은 설명했다. 재량근로제(노사가 서로 합의한 시간만 근로 시간으로 인정)가 시행된다면 이후 사측이 대체 휴무나 급여를 보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계사들의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은 감사 업무가 몰리는 1~3월, 7~8월엔 주 8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 재량근로제가 도입되면 포괄임금제(시간외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회계법인들의 회계사 임금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 노사가 합의한 재량근로제 시간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총 임금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 회장은 "회계사들에게 자본주의 파수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며 "그 기저엔 과중한 업무와 책임에 몰려있는 젊은 회계사들의 열악한 현실이 놓여있어, 매년 1000명의 숙련 인력이 회계법인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설립돼 회계사들이 전문가적 양심을 가지고 업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황 지부장은 "우리 노조는 무조건 회사와 싸우는 조직이 아니다"며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합리적인 선을 찾아가며 합의할 수 있는 단체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삼일회계법인은 올해 8월 말 기준 1868명의 회계사가 근무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 회계법인이다. 삼일회계법인은 1971년 설립 이후 48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