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국내 한 대형증권사의 강당. 이 회사 주최로 열린 브라질 국채 투자설명회엔 평일임에도 200여 명의 투자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증권사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브라질을 직접 돌아보고 왔다”며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대통령선거 전후로 브라질 채권을 분할 매수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브라질 국채는 투기등급으로 분류돼 금융회사의 투자 권유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품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투자설명회 등의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미국 등 A등급 이상 우량신용등급 국가에서 발행한 국채는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면제돼 금융회사에서 투자를 권유할 수 있다.

반면 국가신용등급이 ‘BB-’(투기등급)인 브라질 국채는 신용등급이 낮아 증권신고서 면제 대상이 아니다. 50명 이상에게 투자 권유를 하면 채권 발행 주체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브라질 정부가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해 국내 증권사는 브라질 국채를 투자자에게 판매는커녕 권유할 수조차 없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브라질 채권 투자설명회도 불법이다. 브라질 채권에 투자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금융회사 창구를 직접 찾아온 손님에게만 중개할 수 있다.

증권업계에선 그러나 이 같은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법으로 생각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2016년 이후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불법 투자 권유를 제재한 사례가 사실상 없다”며 “증권사도 불법임을 알고 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해외 채권 설명회’ 또는 ‘해외 경제 설명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어 투기등급 채권상품의 매입을 권유하고 있다. 증권사 지점 창구에서 소비자에게 브라질 채권을 권유하는 일도 여전하다.

금융당국 책임론도 거론된다. 8조원 가까운 시중 자금이 유입된 투자상품이 불법 영업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브라질 채권을 금융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권유해 판매했다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상품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