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에 출석하지 않고 서면으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서면투표제를 시행 중인 유가증권시장 상장 A사의 주총 담당 직원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 통과가 유력해져서다. 전자투표제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는 “정관으로 서면투표를 도입한 기업은 모든 주주에게 소집통지서와 투표 용지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며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는지, 주주가 실수로 하나의 안건에 서로 다른 표결을 하면 어떻게 처리할지 등 모든 게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 회사처럼 서면투표제를 시행 중인 상장사는 두산 포스코 신한지주 한화 등 200여곳에 달한다. 지난해 4월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83개(11.4%), 코스닥 상장사 115개(10.81%)다. 이들 기업은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두 가지 방식의 투표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홍보기획팀장은 “전자 및 서면투표를 동시에 하는 건 비용 낭비일 뿐 아니라 주주가 같은 안건에 서로 다른 표결을 하면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회원사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서면투표 도입 기업이 법 시행 전에 정관을 바꾸면 혼란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달 정기 주총을 한 뒤 수개월 내에 추가로 임시 주총을 열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장대책위원회 대표와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발의안은 각각 법 통과 1년 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발의안은 통과 6개월 후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안 그래도 기업하기 어려운 요즘 현실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서두를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