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26일 오전 11시16분

[마켓인사이트] 공모주 시장 '용과장' 실종 사건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시장 새내기주 가치평가에 갈수록 인색해지고 있다. 뛰어난 성장 잠재력을 갖췄더라도 기업공개(IPO) 이후 힘을 못 쓰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6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상장한 기업 가운데 공모가격을 희망 범위보다 비싸게 확정한 기업은 6곳에 그쳤다. 전체 68개 상장사(기업인수목적회사 11개, 리츠 1개 제외)의 9%에 그쳤다. 2014년 30%, 작년 22%에 이어 비중이 가파르게 낮아졌다.

‘희망 범위 초과’ 공모가 확정 비율은 기관투자가들의 공모주 투자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비율이 낮을수록 수요예측(경쟁입찰 방식의 사전청약) 때 보수적인 가격을 써낸 곳이 많았다는 뜻이다. 희망 범위는 비슷한 업종 상장사의 최근 주가를 참고해 주관사(증권사)가 제시한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공모주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성향이 ‘소부장’(소심한 40~50대 부장) 스타일로 변했다”며 “주식 유통시장에서 ‘용과장’(용감한 30대 매니저)의 쇠퇴와 비슷한 흐름”이라고 전했다.

작년 상반기 주식시장에선 바이오주 ‘대박’이 잇따르면서 가격을 불문하고 매집에 나서는 이른바 ‘용과장’이 크게 주목받았다. 작년 6월과 7월에 상장한 코아스템과 펩트론의 경우 적자기업이 공모가를 희망 범위 상단보다 20% 이상 높게 확정하고도 상한가 행진을 벌여 공모주 가치 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바이오주가 올 들어 2015년 고점 대비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지면서 기관들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바이오주 기술특례 상장 사상 ‘최대어’인 신라젠은 지난달 수요예측에서 공모가격을 희망 범위(1만5000~1만8000원)의 하단으로 결정했다. 신라젠은 이달 초 상장 후에도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올해 최고 청약경쟁률(1443 대 1)로 지난 2월 상장한 안트로젠은 상반기 상승폭을 모두 반납하고 공모가(2만4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펀드매니저는 “기관투자가들은 상장 수일 내 배정물량을 털어내야 하는데 최근 바이오·중소형주 부진 탓에 이를 받아줄 수요 기반이 무너져버렸다”며 “위험이 커진 만큼 가격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