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화학 등 소재 업종과 건설·기계 등 산업재 업종은 경기민감주로 분류된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조정을 받지만 반대로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 제일 먼저 주가가 반등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들 업종은 올 들어 투자자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무제한 매입 결정과 중국 정부의 1조위안 규모 투자계획 승인 등 글로벌 경기 부양책이 잇달아 나오면서 소재와 산업재 업종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경기민감주의 바로미터격인 미국 알코아와 캐터필러 등이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과 기관이 이들 업종을 매수하고 있다.

경기 부양책 나오면 소재·산업재 강세

지난주 후반 미국과 중국 증시에선 소재와 산업재 업종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ECB가 국채 매입을 결정한 지난 7일 미국 증시에선 세계 1위 굴삭기 제조업체 캐터필러가 3.90% 올랐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업체 알코아도 3.88% 상승했다. 같은날 중국 증시에선 전날 정부가 1조위안 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한 영향으로 건자재 기계 철강금속 건설 업종 등이 일제히 상승했다. 중국 최대 시멘트회사인 안후이콘치시멘트는 상한가(10% 상승)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양국 증시에서 소재 및 산업재 종목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단행된 경기 부양책의 학습효과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박헌석 동부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의 1, 2차 양적완화 정책과 유럽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실시 이후처럼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알코아 캐터필러 등 소재 산업재 업종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는데, 이런 흐름이 최근에 다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미국이 1차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한 2008년 12월 이후 소재 산업재 대표 종목의 강세 현상이 두드러졌다. LG화학은 양적완화 정책이 발표되기 전 9만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12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월간 기준으로 6개월 연속 상승하며 2009년 5월 15만원 선을 돌파했다. 현대제철은 그해 11월 말 3만2950원이던 주가가 12월부터 오름세를 타기 시작해 이듬해 7월에는 7만원대에 올라섰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중국 증시가 7일 강하게 반등한 것은 정권 교체 이후까지 고정자산 투자 확대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중국의 고정자산 투자가 늘면 글로벌 증시에서 소재와 산업재 업종의 강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기관, 소재·산업재 매수

국내 증시에서도 소재와 산업재 업종의 반등에 대한 기대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ECB의 국채 무제한 매입 발표 이후 7일과 10일 이틀간 기관투자가의 순매수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LG화학 대림산업 현대건설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등이 포진해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도 LG화학 포스코 대림산업 등을 대거 사들였다. 덕분에 7일 LG화학이 4.86% 오른 것을 비롯해 대림산업(5.65%) 현대건설(5.27%) 두산인프라코어(8.00%) 등이 동반 상승했다. 11일엔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이 하락세를 보인 영향으로 이들 종목도 1~2%대 조정을 받았다.

철강·건설 업종은 최근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다. 대우증권이 지난달 업종별 이익조정비율을 분석한 결과 철강(7.74%) 건설(6.12%) 등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이익조정비율이 크다는 것은 해당 업종에 대해 이익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건수가 하향 조정한 건수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희종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철강 건설 화학 등의 업종은 그동안 이익 모멘텀 둔화로 시장에서 소외됐던 업종인데 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재와 산업재 업종에 대해 여전히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권했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유럽과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지만 실물경기 회복 조짐이 가시화되지 않으면 주가 상승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