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부터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집은 각 서점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새로 들어설 정부의 공약과 정책 방향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서다.

예측이 생명인 주식시장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에 따라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는 등 향후 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공약의 외피보다는 속살을 들여다보는 차분함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 당선자 측이 최우선으로 내세운 민생정책의 핵심인 통신비 인하, 금융산업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금융산업 분리 완화, 한반도 대운하로 상징되는 건설 공약 등의 추진 방향과 영향을 짚어본다.

◆통신비 인하, 너무 떨지 말자

통신비 20% 인하!
소비자들은 귀가 솔깃하겠지만 통신업계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통신비 인하 공약이 오랜만에 화색을 띄고 있는 통신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27일 8대 정책과제를 정하고 통신비 인하 등 민생경제 대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444.49로 52주 최고점을 기록했던 통신업종 지수는 대선을 거치며 27일 400.91로 추락했다.
이는 지난달 이후 통신주가 모처럼 시장수익률을 상회하는 상승세를 보여온 터에 통신비 인하 공약에 대한 불안심리가 매도 물량을 부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단기적 현상일 뿐 실제로 통신비가 단기간에 20%나 떨어져 업계에 타격을 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 등 통신업체들의 내년도 순이익률은 10% 정도로 추산되는데 요금을 20% 깎는다면 적자가 나게 된다”며 “일괄적인 요금인하책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동섭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도 “통신요금을 내린다는 건 영업이익의 감소와 직결되는데 20% 인하라면 장사하지 말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일축했다.

이 당선자의 통신비 공약은 인하폭 목표만 밑그림으로 제시됐을 뿐 시기나 방법은 아직 미정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일류국가비전위원회에서 공약을 내놓기 전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벌였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며 “인수위에서 더 논의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기본요금과 가입비를 내리고 문자메시지 등 필수적인 부가서비스 요금은 할인 또는 폐지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장친화적인 이 당선자의 성향을 봤을 때 요금 조정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M&A(인수합병)나 방송통신, 유무선 융합에 대한 규제 완화로 경쟁을 활성화시켜 요금 인하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방식이 될 것이란 게 증시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당선자도 지난달 20일 IT정책포럼 연설에서 “진입, M&A, 주파수, 번호 부여 등 규제 완화를 통해 통신요금을 최대한 낮추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경우 기존 정책이나 일반적으로 점쳐왔던 향후 시장변화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통신사업자의 망을 임대해 주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제도는 이미 지난 8월 입법예고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포함돼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MVNO제도를 통한 새로운 통신사업자 진출은 예견돼 왔다는 얘기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향후 KT-KTF 합병 등 M&A 이슈도 규제가 완화되면 보다 탄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시장에서는 진작부터 대세로 받아들여 왔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가 직접 요금 규제에 나설 리는 없을 것이며, 경쟁활성화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며 “따라서 요금 인하 공약이 통신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새 정부 출범 직후 총선까지 겹치는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방식의 요금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대선 공약 코너에는 여전히 ‘기본요금과 요금부과단위 조정’을 통신비 인하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공약이기 때문에 상황을 더 파악한 후에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시장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라면 찬성이지만, 인위적인 기계적 인하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삼성은행’은 아직 멀었다

대선 이후 최대 수혜주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던 건설주가 아닌 금융주였다.

특히 은행주는 이명박 당선자의 금융산업 분리 완화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주도하며 지난 17일 613.89에 머물던 금융업종 지수를 27일 658.96로 7.34%나 끌어올렸다.

현재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가 금융기관의 의결권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지방금융기관은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은행’이나 ‘현대은행’은 탄생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가 금융과 산업 분리 원칙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함에 따라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 등 업계 재편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6일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먼저 완화하고 은행권에도 적용할 것"이라며 "은행의 경우 처음에는 기업간 컨소시엄을 통해, 추후에는 단독으로 인수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산업자본의 투명성과 은행 감독기능 구축 등의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막연한 기대감일뿐 가시화되기까지는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은행 인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대부분이다.

삼성증권은 최근 자체 분석 결과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기 보다는 보험사와 증권사의 업무 영역 확대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보험업법 개정을 통한 보험지주 회사 허용 등에 관심을 갖는게 바람직하다는 것.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 27일 은행을 소유하지 않는 보험지주회사나 증권지주회사에 대해 비금융업종 자회사나 손자회사 소유 규제를 완화하는 보험업법 개편 방안을 밝혔다.

심규선 CJ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지난 24일 보고서에서 “산업자본에 은행소유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과 헤지펀드 등에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금산분리를 완화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는 이어 국책은행 등의 민영화를 예상하며 산업은행, 대우증권, 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꼽았다.

이준재 한국증권 애널리스트는 27일 보고서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이 모두 단기간 내에 현실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은행주의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분석했다.

자금조달 비용 급등에 따른 신용 축소와 이자율 인상으로 신용 위험이 동시에 증가할 수 있고, 기존 신용 팽창 전략을 유지한다면 마진 압박에 시달리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는데 막연한 산업재편 기대감만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눈 뗄 수 없는 건설주, 차분히 바라보라

건설주는 대선 이후 기대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작았지만 여전히 수혜주로서의 매력은 탄탄해 보인다. 다만 건설관련 공약의 효과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는 옥석 고르기가 필요하다.

이명박 당선자 공약의 상징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경우 직접적 효과보다는 파급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현식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7일 보고서에서 “운하 건설비용은 연평균 4조원 내외로 국내 건설시장 대비 4%에 불과하며, 도심재개발, 역세권 개발사업보다 적은 수준”이라며 “건설투자심리 회복, 내륙도시 개발, 산업 및 관광단지 개발 등 파급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을 수혜주로 꼽았으며, 오폐수처리장 건설 및 운영시스템 관련 기업으로 삼성엔지니어링, 태영, 자연과환경, 에코솔루션 등을 제시했다.

쌍용양회, 성신양회, 동양메이저, 동국제강, 세원셀론텍, 두산인프라코어 등은 건설기자재 분야에서, 쌍용정보통신, 포스데이타, 토탈소프트 등은 대운하 IT 인프라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운하 완공 이후에는 STX팬오션, 대한해운, KSS해운, 대한통운, 한진 등 운송업체들과 조선업체, 여행업체도 수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 애널리스트는 “운하사업은 경험있는 CEO형 대통령의 의지와 씽크탱크 집단의 지원이 있어서 과거 국책사업 실패와는 차별화된 성과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운하 사업에는 환경단체 등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며, 한나라당도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적 공론이 중요하다”며 2009년 착공 방침에서 한발짝 물러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운하와 함께 부동산 세제 완화와 수도권 개발억제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건설주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장기보유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와 종부세 감면, 도심 재개발 사업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흥분은 금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1일 "급격한 정책변화가 또다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주택수급 불일치와 미분양 문제해결을 위한 공약의 정책 현실화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방 미분양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고 수도권 재개발과 재건축 물량을 많이 확보한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선을 계기로 일부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자 이명박 당선자 측은 ‘시장안정이 최우선’이라며 시장상황을 지켜본 뒤 종부세와 재건축 규제 등에 손을 대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완화와 공급 증대을 통한 집값 잡기라는 대전제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