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국투자신탁 2층에서 열린 금요운용관계자회의.

매주 열리는 회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40여명의 펀드매니저들 사이에는 긴장마저 감돌았다.

"7월께 인사이동이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운용수익률을 업계 1위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모팀장의
얘기가 전달됐다.

펀드매니저들은 이미 이근영사장의 지시가 있었던 걸 알았다.

경쟁사인 대한투신보다 운용수익률을 높이지 않으면 인사조치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명색이 업계의 맏형으로 자부하는 한국투신의 수익률이 저조했던 것이다.

지난 회계연도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냈고 4월부터 시작된
96회계연도에도 마찬가지였다.

운용수익률이 경쟁의 관건인 투신사로서는 위기의식을 가지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올해초부터 매매팀을 신설했다.

리스크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펀드매니저들의 전문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경제연구소 주최로 주2회 업종관계 기관들을 초청, 세미나를 열고 있다"
(한국투신 황규진 주식운용팀장)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펀드매니저의 전문화가 시급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가입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한국의 피터린치나
제프리 비니크를 배출해야 한다.

운용수익률로 승부를 걸고 공시된 수익률에 따라 투자자가 몰리며
수천억이 아닌 수조원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탄생되야 한다.

그래야 세계의 자산운용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투신사들이 매매팀을 별도로 신설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매매팀의 신설은 펀드별로 리스크관리를 위한 것이다.

특정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증권사에 대한 오퍼창구를 통일시킴으로써 "약정을 둘러싼 잡음"을
없애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성과급제의 도입은 아직 본격적으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한국투신이 과장급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국형연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형식적이다.

대한투신과 국민투신도 운용을 잘한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포상금제도와
인센티브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펀드매니저를 프로다운 프로로 만들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서울 LG 동서 교보 신영등 신설투신들은 이미 연봉제를 도입해 운용인력의
전문화를 꾀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쟁시대로 접어든만큼 펀드매니저들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 펀드매니저들도 국제화되야 한다.

자산운용시장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넓혀야 한다.

본격적인 성과급제도입은 물론 외국의 펀드매니저 교육과정을 조사해
연차적으로 해외연수과정을 실시할 계획이다"(대한투신 조봉삼상무)

미국의 투자신탁제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회사형이다.

투자자가 투자회사의 주주가 되고 펀드매니저가 거액의 자산을 운용한다.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명성을 날리고 도태된다.

베어링증권의 니콜라스 리슨처럼 효자노릇을 하던 펀드매니저가 파산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해9월 일본다이와은행이 거액손실을 입었다.

그만큼 자산운용시장에는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관리를 잘하는것도 프로화된 펀드매니저의 요건이다.

"우리나라의 펀드매니저들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다.

월급수준이 높은 샐러리맨에 불과하다.

프로다운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화가 되야한다.

그러나 펀드매니저들은 프로화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투신 백승삼주식운용역)

펀드매니저의 세계에서조차 전문화를 꺼려한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운용수익률을 둘러싸고 동료들간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은 필연적인
추세다.

그러나 펀드매니저들은 그렇지않다.

조직의 융화를 위해서 동료간의 경쟁은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지배적이다.

또 신설투신이 영업을 하더라도 "우리를 따라오려면 멀었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투자신탁의 환경이 격변하고 있음에도 펀드매니저들은 변화의 속도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투신들간의 경쟁시대는 지나갔다.

자본시장이 완전개방되면 투신사들의 경쟁상대는 세계의 유명펀드들이
된다.

<최명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