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영예의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했다. 전쟁영화 ‘덩케르크’는 음향편집상 등 3관왕, SF액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촬영상·시각효과상 등 2관왕에 각각 올라 기술상을 양분했다.

5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 등을 석권했다. 2007년 ‘판의 미로’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던 델토로 감독은 재도전 11년 만에 생애 첫 오스카를 품었다. 이로써 델토로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2013년 ‘그래비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2014년 ‘버드맨’, 2015년 ‘레버넌트’)에 이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세 번째 멕시코인이 됐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사랑 본질 다룬 '셰이프 오브 워터' 4관왕 안았다
델토로 감독은 “어릴 때 멕시코에서 할리우드 SF영화들을 많이 보며 자랐다”며 “미국에서 사는 동안 친구들이 내 꿈을 지켜줬다”고 말했다. 그는 “스필버그 감독이 얼마 전 내게 SF 전설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며 “꿈을 꾸는 모든 분들에게 이 문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다”고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한 비밀실험실을 무대로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종(種)을 뛰어넘는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묻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약자와 소수자들의 연대와 적극적인 운동을 그려 할리우드에 불고 있는 ‘미투’ 열풍과도 맥을 함께한다는 평가다.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판타지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델토로 감독은 1993년 장편 데뷔작 ‘크로노스’로 제46회 칸영화제 비평가상을 받았다. ‘헬보이’ 시리즈와 ‘퍼시픽림’ ‘판의 미로’ 등으로 세계 각국에 많은 팬을 확보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와 작품상을 놓고 경합한 ‘스리 빌보드’는 연기상 2개를 받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주연상, 샘 록웰이 남우조연상을 각각 수상했다. 조엘 코엔 감독의 아내인 맥도먼드는 ‘파고’(1997)에 이어 두 번째, 록웰은 첫 아카데미 수상이다. 맥도먼드는 딸을 죽인 범인을 찾으려 마을 외곽의 대형 광고판 세 개에 도발적인 메시지를 싣는 엄마 역을 맡았다.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내면이 황폐해지는 엄마 역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맥도먼드는 이날 오스카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놓고 객석에 있는 여성들이 일어나도록 독려한 뒤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록웰은 이 영화에서 경찰관 딕슨 역을 맡았다.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일삼지만, 경찰서장의 유언에 따라 개심(改心)하는 인물이다. 같은 영화에서 경찰서장 월러비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과 경쟁한 끝에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은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 역을 뛰어나게 소화해낸 게리 올드먼에게 돌아갔다. 처칠은 히틀러의 본질을 꿰뚫고 달콤한 거짓 평화협정을 물리치고, 영국인들에게 고난의 투쟁을 독려한다. 올드먼은 생애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여우조연상은 ‘아이, 토냐’에서 열연한 앨리슨 제니가 받았다. 1980~1990년대 미국 피겨스케이팅 스타인 토냐 하딩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