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드럼 치는 기러기 아빠 역

40대 록밴드 재결성을 소재로 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즐거운 인생'(제작 영화사 아침)이 흥겨운 건 물론 록 선율 자체가 큰 몫을 한다.

거기에 이 배우가 이를 다 드러낼 만큼 활짝 웃으며 드럼을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더 흥겹다.

배우 김상호(37)다.

여느 조연들처럼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다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에서 사기꾼 멤버로 영화에 본격 진출한 이후 숱한 영화에서 관객의 시선을 끈 그가 마침내 '즐거운 인생'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꿰찼다.

아직 이름만 들어 가물가물한 관객이라도 '타짜'에서 고니(조승우)를 화투 도박의 세계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한 박무석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장진영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룸살롱 전무는 기억할 것.
김상호는 아내와 자식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후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 혁수 역을 맡았다.

아들이 뛰노는 동영상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그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 불쌍한 처지가 된다.

그런 그에게 대학시절 만들었던 록밴드 활화산이 다시 모여 드럼 스틱을 잡게 된 건 괴로운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최근 활화산 멤버들과 함께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했습니다.

영화 속이 아닌, 활화산의 첫 무대였죠. '터질 거야' '한동안 뜸했었지'를 불렀는데 연극 무대에 많이 올라서인지 떨리지는 않고 무척 재미있었어요.

방청객도 우리가 프로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인지 약간의 실수도 잘 봐주시더군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등 배우들이 두 달간 하루 8시간 이상씩 연습한 것은 꽤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저희들에게 악기는 이성이고, 연기는 감성이죠. 시나리오 보고 극복하고 싶었던 건 기술적인 기교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했던 겁니다.

연주하느라 신경 써 웃지도 못하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걸 가장 경계했습니다."

영화를 찍는 내내 신났다.

"형님들이랑 연습하면서 믿음이 생겼어요.

연극과 달리 영화는 사실 배우가 함께 촬영하는 신이 없으면 잘 만나지도 못하는데 연습을 매일 같이 하면서 연극 준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죠. 진영 형은 큰형님 같고, 윤석 형은 둘째형 같고, 근석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막내처럼 잘 따라다녔어요."

삶에 지친, 그래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40대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김상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어렸을 때 그저 집을 떠나고 싶었던 그는 느닷없이 (자신은 숫자 개념에 약해 몇 년도에 무엇을 했는지 정확지 않다고 말한다) 연극배우가 됐다.

현재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연출가로 꼽히는 김광보 씨가 만든 극단 청우에서 공연했던 그는 생계가 어려워지자 1998년 연극을 그만뒀다.

처가가 있는 강원도 원주에서 라면장사 하다 원가 계산 등을 잘하지 못해 '말아먹고', 낮에는 '노가다' 뛰고, 새벽에는 신문을 돌렸다.

"어느 날 내 자식한테 창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식을 떳떳하게 꾸중할 수 있는 아버지가 돼야 할 텐데, 만약 자식이 꿈을 향해 가다 포기할 때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에게 이야기했죠. 일주일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더군요.

공사판에서 번 돈 500만 원을 들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연기라는 꿈을 다시 찾아온 그는 달라져 있었다.

"그 전까지 김상호는 '대학로에서 가장 포스터 잘 붙이는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올라와서 '인류 최초의 키스'라는 공전의 히트작 무대에 섰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어? 김상호?'라고 봐주더군요.

어디 갔다오더니 애가 달라졌네, 하면서."

일명 '떼신'에 출연해 영화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흑수선'을 하면서 뭔가 맞지 않는 옷 같아 영화 출연을 꺼렸다.

그 이후 '범죄의 재구성'에서 영화의 맛을 보기 시작했고 이후 끊이지 않고 조연급으로 출연해왔다.

그는 꿈을 이룬 건가.

"꿈에 가까이 가고 있는 거죠. 꿈이란 게 꿈일 뿐 아닐까요.

잡으려 하면 쏙쏙 빠져버리는. 하지만 '좋은 배우가 될 거야'라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면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은 배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과 가치관이 닮아 있는 그. 현실이 팍팍한 것도 닮아 있다.

배우라는 직업이 결코 화려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그는 인터뷰 다음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꿈을 향해 가는 그의 발목을 절대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배우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