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 도수치료 등 실손보험 손실의 주범으로 꼽혀온 9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당국 차원의 보험금 지급 기준 가이드라인이 끝내 백지화됐다. 대신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 지급 심사를 강화할 수 있도록 기본 원칙이 마련됐다. 하지만 조항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현장에서 보험금 지급을 놓고 벌어지는 병·의원과 보험사 간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금융감독원은 27일 보험사기 예방 모범규준을 개정 예고한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은 보험사기 의심 건에 대해 심사를 강화하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료 근거 제출 거부 △신빙성 저하 △치료·입원 목적 불명확 △비합리적인 가격 △과잉진료 의심 의료기관 등 5대 기본원칙을 제시한 게 골자다.

이들 요건에 해당하면 질병 치료 근거를 추가로 확보하거나 제3의 의료기관으로부터 조언을 받는 등 보험사기 조사에 나설 수 있다. 그 결과 구체적인 정황이 발견되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수사 의뢰 등 조치에 나선다.

그러나 이들 원칙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보니 오히려 일선 현장에서 분쟁만 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5대 원칙 가운데 ‘비합리적인 가격’이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진료 비용이 합리적인 사유 없이 공시 가격보다 현저히 높은 경우로서 보험사기 행위 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사례”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나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의료계 반발에 밀려 실손보험 재정 누수의 책임을 일선 보험사에만 떠넘긴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9대 비급여 항목의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했지만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법적으로 감독당국이 마련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각급 의사단체와 협의해 기본 원칙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