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지난 2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갤럭시 언팩 2022' 행사에서 '갤럭시 S22 울트라'(왼쪽)와 '갤럭시 S22'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지난 2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갤럭시 언팩 2022' 행사에서 '갤럭시 S22 울트라'(왼쪽)와 '갤럭시 S22'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갤럭시S22의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논란을 비롯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저하 이슈, 국제 사회의 대(對) 러시아 제재 동참 등 동시다발 압박에 맞닥뜨리면서 최고경영진(CEO)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GOS 사태' 갤럭시S22 역대급 흥행에 찬물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달 출시한 플래그십(최고급 기종) 스마트폰 갤럭시S22 시리즈가 게임 등 특정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할 때 성능을 떨어뜨리는 GOS 실행을 강제해 이용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삼성멤버스'를 비롯한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GOS 실행 강제 방침에 항의하는 이용자들이 눈에 띄었다. GOS는 고차원 연산이 필요한 게임 등을 실행할 경우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조절하는 장치다. 화면 해상도를 조절하고 성능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등 연산 부담을 줄여 스마트폰의 발열을 막아준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22 시리즈 이전에도 GOS를 탑재했지만 스마트폰으로 고성능 게임을 즐기려는 이용자들은 유료 앱을 사용해 GOS를 비활성화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원 UI 4.0 업데이트로 GOS 탑재가 의무화됐고 우회 방법으로도 GOS를 삭제할 수 없게 했다.
갤럭시 GOS 이슈 관련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카페도 [사진=네이버 카페 캡처]
갤럭시 GOS 이슈 관련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카페도 [사진=네이버 카페 캡처]
삼성전자의 GOS 의무 탑재와 강제 실행은 전작 갤럭시S21 시리즈에 발생한 발열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사양 게임을 하다 보면 발열이 지속되고 이 경우 이용자가 저온화상을 입는 등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전작보다 성능이 좋다는 광고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는데 속았다"거나 "6년 전 출시된 스마트폰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불만이 커지자 결국 삼성전자는 이용자들이 앱 적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품 출시 초기 시장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면치 못했다.

파운드리 수율 문제…경영 진단으로 끌어올릴까

삼성전자 위기설은 파운드리 수율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부품(DS) 사업부문 산하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첫 경영 진단(감사)에 착수했다.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 승격 후 첫 경영진단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첨단 공정수율이 30%대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최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2200'이 가장 문제로 지적됐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2 탑재용으로 엑시노스2200을 개발했지만 파운드리 사업부가 낮은 수율 문제로 납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공개했던 '엑시노스2100' 역시 발열 문제가 불거져 이를 탑재한 갤럭시S21 이용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엑시노스2200 [사진=삼성전자]
엑시노스2200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짧으면 3개월, 길면 7개월가량 해당 사업부 대상으로 경영 진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파운드리 사업부가 경영 진단을 거친 후 대대적 인사, 조직 개편, 관리 프로세서 변화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안팎에서 우려하는 낮은 수율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미세공정 수율 문제를 인정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작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기술력 상승으로 초기 안정적 수율을 확보하는 데 난이도가 상승한 게 사실"이라며 "역량을 모아 선단공정 조기수율 확보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수율로 인한 AP 경쟁력 하락은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AP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4%에 그쳤다. 전년 동기(7%)보다 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대만 미디어텍(33%), 미국 퀄컴(30%)·애플(21%), 중국 유니SOC(11%)에 이은 5위로 두 계단이나 떨어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미세공정 일부 제품 수율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내부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지적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경영진단은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통상적인 활동"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애플 '러시아 보이콧' 선언…삼성전자도 압박 받아

애플 로고와 러시아 국기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애플 로고와 러시아 국기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외부 요인도 겹쳤다. 러시아에서의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한 애플이 삼성전자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미국 경제전문 매체 CNBC 방송이 지난 3일 보도했다. 시장조사업체 CCS인사이트의 수석애널리스트 벤 우드는 애플의 이같은 움직임이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들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드는 "그들(애플)이 공식 선언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문제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무어인사이트앤드스트래티지의 수석애널리스트 안셸 새그도 애플의 조치로 인해 "다른 회사들(삼성전자 등)이 어쩔 수 없이 러시아 판매 중단을 따라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애플은 지난 1일 러시아에서 모든 제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러시아 외 지역의 앱스토어에서 러시아 관영 매체 러시아투데이(RT), 스푸트니크 뉴스를 퇴출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결정은 상대적으로 러시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은 15% 정도다. 애플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3200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한 것으로 추산되며 러시아에 오프라인 애플스토어도 없다.

반면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고수해왔다.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은 33.2%에 달한다.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신형 갤럭시S22 시리즈를 출시했고 현지에서 공장도 가동 중이다. 애플처럼 과감한 선택을 내리기에는 고려해야 할 사안의 무게감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러시아 시장에서 발을 뺄 경우 차후에 재진입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 사이 러시아의 우방인 중국의 화웨이·샤오미·오포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상당수 점유율을 흡수할 것이란 전망도 삼성전자로서는 고민이다. 삼성전자가 개척해놓은 러시아 신시장이 자칫 중국에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업계 관계자는 "GOS 이슈는 급하게 이용자 목소리를 반영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 신뢰가 떨어졌다"며 "뿐만 아니라 노조 문제, 성과급 배분 이슈, 수율 저하로 인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시장 진입 지연, 엑시노스 점유율 하락 등 삼성전자가 대내외 이슈에 직면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제제는 미중 갈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략적 침묵이 길어지다 보면 국제 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며 "오는 16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몇 가지 시나리오를 대안으로 가지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