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자 지급조건이 붙은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선고 2012다89399)을 통해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정립하면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재직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설시하였다. 재직조건부 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이 지급조건이 되므로 그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초과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그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다수의 대법원 및 하급 판결은 이러한 법리를 정기상여금에도 적용하여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해 왔다(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6다15150 판결,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7다247602 판결 등 다수).

그런데 최근 학계와 일부 하급심에서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와 달리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하급심 판결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재직조건 자체를 무효라고 판시함으로써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유형이 그 하나이고, 재직조건은 유효로 보면서도 정기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정한 퇴직은 개인의 특수한 사정에 불과하다는 등의 이유로 고정성을 인정하여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는 유형이 그 두번째이다.

재직조건 자체를 무효로 본 대표적인 판결은 서울고등법원 2018년 12월 18일 선고 2017나2025282 판결이다. 이 판결은 ① 정기상여금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수개월간 누적하여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지급일 이전에 퇴직하는 근로자도 퇴직 전 근로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에 대하여는 지급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는 점, ② 재직조건은 이미 발생한 임금을 그 이후의 지급일에 재직이라는 사실에 따라 지급 여부만을 정하는 지급에 관한 조건이므로, 이미 발생한 임금에 대한 부지급을 선언하거나 근로제공의 대가로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서 무효인 점, ③ 정기상여금은 근로자의 생활유지를 위한 안정적인 수단으로서 기본급과 다를 바가 없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근로를 제공하면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인 점, ④ 재직조건은 강제근로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7조 및 임금보호를 위한 각종 관계 법령의 취지에 반하는 점 등을 근거로, 재직조건을 무효로 보았다. 이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어 있는 상태다.

재직조건을 유효로 보면서도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로는 서울고등법원 2020년 12월 2일 선고 2016나2032917 판결이 있다. 재직조건이 있더라도 개인의 특수한 사정에 불과하다는 등의 이유로, 정기상여금에 대하여 소정근로의 대가성 및 고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 2016나2032917 판결은 재직조건의 효력에 대하여 이를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고 퇴직 시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미지급이나 초과지급 상여금을 정산하지 않기로 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어 유효하다고 보면서도, ① 정기상여금은 연간 지급액이 월 기본급의 800%로 확정되어 있고 그 지급액은 연간 소정근로의 대가일 뿐이므로 연간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추가조건의 성취 여부와 관계 없이 당연히 지급되는 임금인 점, ② 휴직자, 복직자, 징계대상자 등 개인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급을 제한하는 임금도 정상적인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임금지급의 일률성이 부정되지 않는 등에 비추어, 재직조건은 ‘퇴직’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임금 정산의 편의를 위한 방안일 뿐 이로 인해 추가조건 성취(퇴직) 여부에 따라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고 정상적인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확실한 조건인 점 등을 근거로, 통상임금이라고 인정하였다.

이렇듯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하급심 판결에서 다른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고 있고, 그 중 상당수가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대법원이 위와 같은 하급심 판결의 전향적인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 다시 통상임금 소송이 줄이어 제기되는 등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상여금이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근무기간에 상응하는 상여금이 반드시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해이다. 특정 근무기간에 대한 기본급을 지급하고 나머지 임금항목의 경우 일정한 조건이나 기한을 부가하여 지급하는 것도 사적 자치의 원칙상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상여금의 경우는 이미 제공된 근로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다는 의미 외에도 향후 계속 근무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되며, 근로자의 근무의욕을 고취시키려는 목적도 그 지급 취지에 포함된다. 이러한 목적과 사적 자치의 원칙 하에 상여금에 대해서는 특정한 지급 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적법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기본급 외 상여금이라는 형태의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여금에 대해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판례들은 “상여는 노동의 대가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하지만 그 지급조건을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라고 할 수 없고, 또한 종업원의 근무계속의 확보라는 견지에서 보면 재적자(在籍者) 요건을 설정하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회사의 취업규칙에 상여의 지급에 대해서 재적자 요건을 둔 것이 노동기준법 제24조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상여금에 대한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였으며(神戶地判 平成 元年 3. 27. 勞判 553 89頁), “상여금을 지급일에 재적하고 있는 자에게 한정하는 것도 노동능력의 향상 내지 그 의욕의 확보라는 견지에서 보면 타당한 면을 가지고 있고 합리성을 가진 것”이라거나(札幌高判 昭和 58. 3. 29. 勞判 418 112頁), 상여금의 성격에 비추어 “상여의 수급자격자를 명확한 기준으로 확정할 필요에서 정해진 것으로 인정되는 합리성이 있다”라고 판시하기도 하는 등(東京地判 平成 14. 9. 9. 勞判 838 ダイジェスト 98頁),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추구해야 하는 최고의 가치는 법적 안정성이어야 한다. 대법원이 사회의 혼란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법원과 수많은 하급심 판결들이 수년간 반복적인 판결을 통해 재직조건의 유효성과 재직조건부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여 왔고, 사회가 이를 신뢰하여 노사합의를 통해 임금체계를 변경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 10년도 경과되지 않는 시점에서 이를 뒤집는 것은 사회의 혼란만 야기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김 변호사는 통상임금, 불법파견 등 주요 노사관계 현안은 물론 최근에는 세종 중대재해대응센터장을 맡는 등 기업의 인사노무 업무 전반에 있어 국내 최고 수준의 법률가 중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