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시장가격 개입 지나쳐…유니콘 해외상장 부추길 수도"
"공모가 과열은 현실…투자자 보호 차원" 의견도
금융당국 잇단 IPO 대어 '공모가 낮추기' 논란 확산
대형 기업공개(IPO) 종목의 공모가가 사실상 금융당국의 요구로 잇따라 낮춰지면서 증권업계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국이 명확한 근거 없이 공모가를 고평가라고 판단해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발이 적지 않은 가운데, 청약 시장의 과열 양상을 고려하면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IPO를 실시했거나 앞둔 기업가치 수조원 대 이상 대형 공모주 4개 가운데 카카오뱅크를 제외한 SD바이오센서,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3곳이 모두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았다.

이런 요구는 일단 공모가 수준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금감원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서 지난달 하순 크래프톤에 대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면서 "공모가 산정 기준을 더 명확히 기재해달라는 취지"라며 "공모가가 높은지 낮은지 우리가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SD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이 정정신고서에서 공모가를 낮춰 제출한 뒤 통과된 것을 고려하면 금감원의 정정 요구는 사실상 공모가 인하 압박이라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반응이다.

크래프톤의 경우 당초 글로벌 콘텐츠 업체 월트디즈니 등과 비교해 자사 기업가치를 산정, 공모가 희망 범위를 45만8천원∼55만7천원으로 제시했다가 '거품' 논란 속에 정정 요구를 받자 희망 공모가를 40만∼49만8천원으로 낮췄다.

SD바이오센서도 공모가 희망 범위를 최초 6만6천∼8만5천원에서 4만5천원∼5만2천원으로 낮춰 정정했다.

가장 큰 쟁점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져야 할 공모가 수준에 당국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다.

회사 측이 제시한 공모가가 비합리적인 수준이면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걸러지기 마련인데 금감원이 자의적으로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금융투자업계에서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가 희망 범위가 지나치게 높으면 수요예측 과정에서 공모가가 희망 범위 하단으로 정해지거나 흥행에 실패하는 등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다 거치게 된다"며 "지금은 당국이 가격까지 지나치게 관리하려고 드는 것 같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이 수요예측에 참가하는 기관·외국인 투자자들보다 적정 주가를 더 잘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며 "공모가가 높은지 낮은지는 금감원이 걱정할 영역도 아니고 금감원이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금감원의 공모가 낮추기가 국내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1조원대 이상인 비상장기업)들을 국내 증시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고 해외 상장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도 거론된다.

앞서 지난 4월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쿠팡 같은 기업이 미국 증시로 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시장에서 '제값'을 받겠다는 것"이라며 국내 유니콘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쿠팡이 국내에 상장해서 지금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 했으면 금감원이 그냥 놔뒀겠느냐"며 "이런 식이면 유니콘이 (기업가치를 더 받을 수 있는) 해외 증시 대신 국내 증시에 상장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공모주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공모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로 SD바이오센서의 경우 유가증권시장 상장 첫날인 16일 종가가 6만1천원으로 최초 공모가 희망 범위인 6만6천∼8만5천원을 상당히 밑돌면서 '공모가 거품'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기도 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개입이 지나친 것도 사실이지만, 상장 주관사 등 공모가가 높을수록 이익을 얻는 증권사들 쪽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측면도 있다"며 "시장 열기가 한창 뜨거울 때 상장해야 한다는 해당 기업 및 관련 증권사들과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당국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