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 개정 뒤 발전신청 3천500만㎡에 달해…염도 측정 기준·방법도 논란
임대농 경작권 상실·농촌 황폐화 우려…영농형 태양광 등 보완책 필요

전남 고흥, 영암, 완도, 충남 당진 등 서남해안 간척지가 몸살을 앓고 있다.

"멀쩡한 땅에 염해 있다고"…서남해안 간척지 태양광 시설 몸살
소금기로 염해가 있는 간척지 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가능하도록 농지법이 바뀌면서 발전사업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라 태양광 발전시설 확대에 무게가 실리면서 어렵게 조성한 농지가 잠식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양광 발전시설 가능 여부의 기준이 되는 토양 염도 측정 방법부터 농지를 내놓아야 하는 임대농과의 갈등 등 논란과 잡음이 적지 않다.

◇ 간척지에 우후죽순 태양광 시설 들어서나…법 개정 뒤 3천500만㎡ 신청
공유수면 매립을 통해 조성된 농지, 이른바 간척지 농지에 태양광 시설을 하기 위해선 토양 염도가 일정 기준을 넘어야 한다.

염해(鹽害)가 있어 농사를 짓기 어렵다는 입증인 셈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업자의 신청을 받아 측정·분석·판정한다.

농지법이 개정된 2019년 7월 이후 접수된 건수는 98건에 면적만 3천536만㎡에 달한다.

법 시행 1년 반 만에 평수로 1천만 평이 넘는 농지가 검은 태양광 패널로 뒤덮일 상황에 놓였다.

발전시설 사업성을 위해 일반 사업자는 10만㎡ 이상, 농업인이나 농업법인은 5만㎡ 이상 신청할 수 있다.

78건 2천379만㎡의 검사가 완료됐고 4건 152만㎡, 16건 1천5만㎡는 검사 시행 중이거나 할 계획이다.

검사 완료 농지 중 태양광 시설이 가능한 농지는 90% 이상에 달한다.

10건 중 9건 이상이 기준 염도를 넘겼다는 의미다.

◇ 염도, 어떻게 측정하나…기준·방법 논란 적지 않아.
필지별로 1곳 이상 심토(深土·지표면 아래 30∼60cm)를 채취해 염도를 측정한다.

농도가 5.5dS/m(데시지멘스퍼미터) 이상이면 염해 농지로 판정돼 태양광 시설이 가능하다.

이 농도면 30% 정도의 벼(수도작) 수확 감소가 있다는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기준을 원용했다는 것이 공사의 설명이다.

논란은 바다를 매립한 땅이기에 통상 표토(表土·지표에서 30cm)보다 심토의 염도가 훨씬 높다는 데 있다.

벼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데 심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1회 뿐인 염도 조사 시기와 횟수도 논란이다.

간척지는 비가 많이 오거나 가물 때 염분 농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농어촌공사는 심토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염도가 연중 일정하고 강우나 염수 살포 등 염도 조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조사 횟수를 늘리면 발전사업 준비 기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고 검사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표토를 했을 경우 기준치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사실상 법 제정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멀쩡한 땅에 염해 있다고"…서남해안 간척지 태양광 시설 몸살
◇ 농촌사회의 또 다른 갈등 요소로 등장
신청 건당 평균 면적이 35만㎡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농지가 태양광 시설에 들어가면서 땅 주인과 임대농 간 갈등, 마을 주민 반발 등이 농촌 사회의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임대농은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

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이농을 부추길 수 있어 농촌 황폐화의 또 다른 원인이다.

대부분 간척지 농지의 절반 이상은 임대농이 경작하는 상황이다.

지역에 따라 발전사업자가 제시하는 연간 임대료는 차이가 있지만 평당(3.3㎡) 5천∼6천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벼 재배 소득 평당 2천680원(2019년 기준)에 비해 배 이상 많다.

임대농에게 받는 돈은 평당 1천원 선이다.

땅 주인은 태양광 발전사업자에게 받는 임대료가 훨씬 높기 때문에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발전시설 농지와 무관한 마을 주민들은 경관 훼손, 환경파괴 등의 이유로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고흥군의 한 주민은 "수십 년간 멀쩡하게 농사를 잘 지어온 해창만 논을 하루아침에 염해 논으로 둔갑시켜 태양광 시설을 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고 말했다.

◇ 태양광 시설 20년 뒤 농지 복구 가능하나
간척지 조성에는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바다를 메운 명분은 식량 자급을 위한 우량 농지 확보에 있다.

이에 따라 염해 농지 내 태양광 시설도 20년 사용 뒤 원상회복이 조건이다.

주민들은 발전시설에 쓰인 논이 20년 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회복이 될지 의문시한다.

간척지가 장기간 영농이 중단되면 염해가 심해져 아예 농사를 짓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년 뒤 폐기할 발전시설 등의 철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농어촌공사는 현재 설치돼 있는 농수배로를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땅에 일정 수위의 물을 유지해야 하기에 염해가 심해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멀쩡한 땅에 염해 있다고"…서남해안 간척지 태양광 시설 몸살
◇ 대책은 없나…농사·발전 동시에 영농형 태양광 시설 주목
이른바 염해 간척지 태양광 발전사업은 농사짓기가 어려운 농지에서 신재생 에너지원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논농사를 줄여야 하는 당국의 고육지책도 담겨있다.

하지만 충분히 영농이 가능한 농지까지 무리하게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양광 발전사업 기준이 되는 염도 측정 방법이 적정한지, 발전시설 확대에만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원점에서 재평가·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농과 태양광 발전시설을 함께 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 시설이 농지도 살리고 신재생 에너지도 확보하는 대안이라는 의견도 많다.

서일곤 고흥 포두면 이장단 단장은 "간척지에서 농사를 지어온 임대농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며 "이른바 염해 간척지 발전시설은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정책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순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총무국장은 "염해 간척지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하겠다는 것은 농업을 하찮게 생각하고 농촌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설치 반대를 위한 연대회의를 통해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영농이 어려운 농지를 활용하고 20년 뒤 다시 원상회복하는 등 신재생 에너지 정책과 농지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정책으로 판단한다"며 "염도 측정을 위한 조사 횟수나 방법 등은 관계부서와 협의 끝에 마련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