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등 반도체 강국들의 기술 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지원 확대를 요청하고 나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발간한 '2020년 미국 반도체 산업 현황 보고서'를 통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국내 생산, 인력 양성 등에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IA는 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역성장과 올해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도움을 촉구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SI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47%로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19%로 2위에 올랐고 일본(10%) 유럽(10%) 대만(6%) 중국(5%) 순으로 나타났다.

제품별 점유율에서는 '로직'과 '아날로그' 반도체에서 미국이 각각 61%, 63%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로직과 아날로그는 연산과 정보처리 중심의 시스템 반도체의 대표 분야다.

반면 메모리 시장에선 지난해 한국이 점유율 65%로 23%에 그친 미국을 크게 앞질렀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글로벌 메모리 업계 1위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의 영향이다.

특히 SIA는 최근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인 '미세공정' 기술경쟁을 언급하며 다른 국가들의 추격을 지적했다. SIA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업계 선두인 미국과 대만·한국의 기술 격차는 2년 정도였다.

그러나 2015년에는 이 격차가 1년으로 좁혀졌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SIA는 미국과 대만, 한국의 로직 생산 측면에서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SIA도 보고서를 통해 "2010년에 미국은 가까운 경쟁자인 한국과 대만에 비해 2년간 기술적으로 앞섰으나 2019년엔 3개국이 7나노(㎚)와 10나노 등 최신기술 경쟁에서 막상막하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SIA는 전 세계적으로 '최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관한 통계를 내면서 "한국, 대만, 미국 오직 세 나라만이 최신 기술을 갖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SIA에 따르면 2001년 기준 25곳 이상이었던 '최신 기술' 보유 기업은 2009년 10곳 미만으로 떨어지더니 2018년말 기준으로 5곳까지 줄었다. SIA는 기업명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업계 추정상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정도만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SIA는 최근에도 일자리 창출 등을 거론하며 미국 행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지난 16일 SIA는 경제분석업체 '네이선 컨설팅'이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용역 보고서 '스파킹 이노베이션'을 통해 미국 연방정부가 반도체 R&D에 투자하는 비용 1달러당 GDP가 16.5달러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따.

SIA는 반도체 R&D가 국내 일자리 창출과 GDP 상승 등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같은 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분야 R&D가 결국 인텔, 퀄컴, 마이크론 등 민간 기업들의 R&D까지 촉진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유발 효과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투자 활성화가 결국 반도체를 포함한 글로벌 기술산업 패권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SIA는 "연방정부가 반도체 R&D 투자를 크게 늘리면 이는 향후 국내 경제에 큰 파급력을 갖는다"며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 업계가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 정부의 투자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