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일본의 장비와 소재, 부품업체들의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없으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제대로 생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메이드 인 재팬' 없인 생산 힘든 제품 수두룩
세계 메모리 반도체업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스텔라, 모리타 등 일본 업체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 핵심 공정인 웨이퍼의 세정(洗淨)과 식각(蝕刻)에 쓰인다. 솔브레인 등 국내 업체들이 뒤늦게 불화수소 생산에 나섰지만 역사가 100년이 넘는 일본 업체의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다.

스마트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증착(蒸着) 장비도 일본산이 대부분이다. 캐논 자회사인 캐논도키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대형 유리 기판에 얇은 막을 균일하게 형성하는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이다. 기기 한 대당 가격이 1000억원이 넘는데도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지난해 한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낸 적자는 240억달러(약 28조5000억원)로 전 세계 국가 중 1위였다. 수입 반도체 장비의 34%, 고장력 강판의 65%, 플라스틱 필름의 43%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일본 업체에 대한 지나친 기술 의존도가 국내 간판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이 수입하는 장비와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며 “그래야 중소 협력사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