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11월26일 ‘글로벌 임금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해 ILO 임금 보고서의 제목은 ‘성별 임금 격차의 배경’이다. ILO가 세계 73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20.5%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79만5000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성별 임금 격차는 오늘날 불평등을 보여주는 큰 징표 중 하나”라며 “각국은 그 배경을 파악하고 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별 임금 격차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ILO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6.7%로 고소득 국가군 가운데 네덜란드(39.7%) 다음으로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는 2017년 기준 34.6%로 불명예스러운 1위다.

男女 임금격차는 20%일까, 5%일까
하지만 성별 임금 격차가 곧 ‘성차별’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성별 외에 업종, 고용형태, 근속연수, 학력, 전공 분야 등 다양한 요소가 임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얘기하는 교란 변수들이다. 미국 취업·채용 전문기업인 글라스도어는 2016년 3월 미국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 5개국의 성별 임금을 조사했다. 5개국 모두에서 남성 임금이 여성보다 20% 안팎 높았다. 그러나 연령, 교육수준, 직책, 지역 등의 변수를 같은 조건으로 맞췄을 땐 남녀 간 임금 차이가 5% 정도로 줄었다.

미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4.1%였지만 다른 변수를 통제하고 비교했더니 격차가 5.4%로 축소됐다. 같은 방식으로 했을 때 영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2.9%에서 5.5%로, 호주는 17.3%에서 3.9%로 줄었다. 미국대학여성협회(AAUW)의 2012년 연구에서도 전공과 직종이 같은 남녀의 임금 격차는 7%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남녀 차이가 임금 격차의 주된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대기업(종사자 300명 이상) 남성 근로자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중소기업 남성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1980년대 초 90%에 육박했으나 최근엔 70%에도 못 미친다. 반면 같은 기간 대기업 여성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 남성 근로자 대비 40%대에서 60%대로 상승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12년 저서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서 “한국 노동시장을 분절시키는 핵심 요소가 과거에는 성별과 학력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엔 기업 규모와 고용형태가 더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했다.

기업 규모와 업종, 고용형태 등이 임금 수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성차별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앤드루 체임벌린 글래스도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도 성별 임금 격차는 유의미한 수준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출산·육아와 가사노동 부담으로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고용형태, 근속연수, 직위 등에 따른 임금 격차도 결국 성차별이 바탕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면서 고위직 진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취업여성의 연령별 비정규직 비율은 30대 30%에서 40대엔 37%로 높아졌다. 육아를 위해 일을 중단했다가 일자리를 다시 구했을 때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이 높다는 얘기다. 남성 비정규직 비율이 30대엔 16%에서 40대 18%로 큰 변화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ILO는 “여성 중에서도 엄마의 임금이 엄마가 아닌 사람의 임금보다 낮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성 역할에 고정관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의학, 공학, 경영학 등 미래 고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 남학생이 많이 몰린다는 점에서다.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다른 변수를 통제한 미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지난 10년간 4~6%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성별 임금 격차는 법·제도적 개선은 물론 사회적 고정관념까지 바꿔야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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