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료산업 개척자에서 '미스터 사카린'으로 김동길 경인양행 명예회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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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0세의 김동길 경인양행 명예회장(사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에 사카린을 타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양이었다. 그를 따라 극소량의 흰 가루를 커피에 타 마셨더니 강렬한 단맛이 혀를 휘감았다.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경인양행빌딩에서 만난 김 회장은 “원래 단맛을 좋아한다”며 “사카린은 열량과 혈당지수가 모두 ‘제로’이니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데에도 설탕 대신 사카린을 쓴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 나이에 당뇨와 연관된 약은 하나도 먹지 않는다”며 “내 몸이 사카린의 효능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1971년 신오화학공업이란 염료 회사를 세워 국내 염료산업의 대표격인 경인양행으로 키운 김동길 명예회장은 ‘사카린 신봉자’다. 스스로도 ‘미스터 사카린’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2000년대 중반 회사에 합류한 외아들 김흥준 대표에게 경영을 모두 맡긴 5~6년 전부터 오로지 사카린 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떡, 마요네즈 등 6개 품목에 사카린 사용을 허가했다. 2014년 과자, 빵 등 30개 품목에 이어 허용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사카린 규제가 풀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회장도 2010년 이후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카린의 안전성을 설명한 게 효과를 봤다고 감격해했다. 그는 “독성이 없고 설탕과 달리 혈당을 높이지 않는 사카린은 비만과 당뇨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인공감미료”라며 “그러나 여전히 사카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 이를 바꾸는 데 10~20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카린과의 만남, JMC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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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란 뒤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과(학사·대학원 수료)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와 몇몇 화학업체의 연구원을 거쳐 1971년 신오화학공업(현 경인양행)을 창업했다. 이후 염료와 휴대폰 및 TV 등에 들어가는 전자재료를 개발·생산하며 경인양행을 연간 매출 1400억원대의 상장사(유가증권시장)로 키웠다.

김 회장이 사카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2004년 제이엠씨(JMC)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다. 원래 회사명이 제일물산공업이던 JMC는 1953년 부산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사카린 제조업체였다. 경인양행은 염료의 중간체 원료인 파라베이스라는 물질을 JMC에서 공급받고 있었다. 이 물질은 사카린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사카린 사용 규제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진 국내 사카린 제조업체들은 거의 망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JMC가 이리저리 팔려다니던 때였다.

김 회장은 “2002년께 처음 인수 제안이 왔을 때 거절했는데 2년 뒤 다시 회사를 매입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가 왔다”며 “사카린은 잘 몰라도 JMC가 좋은 화학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데다 가격이 싸서 인수를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2004년 11월 JMC는 경인양행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당시 국내에선 사카린이 대표적인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었다. 경인양행의 일부 임원도 사카린 제조를 중단하자고 의견을 냈다. 김 회장도 그럴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카린의 수출이 계속 늘어나는 게 심상치 않았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되는 사카린 양이 점점 늘어났다”며 “우리가 안 먹는 사카린을 왜 사가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말 중국에 있던 세계 최대 사카린 제조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세계가 사카린 품귀 현상에 시달리게 됐다. 가격이 ㎏당 5달러에서 30달러까지 치솟았다. JMC의 수출량도 크게 늘었다. 김 회장은 2011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고를 보고 무릎을 쳤다. 기고엔 미 식품의약국이 사카린을 안전한 인공 감미료로 판단했는데도 환경보호청은 수년간 기업들의 사카린 사용을 제한하다 뒤늦게 규제를 철폐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사카린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을 본 김 회장은 “사카린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사카린은 건강한 감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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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1960~1970년대까진 식품에 사카린이 많이 쓰였다. 상당수 고령층이 사카린에 대한 ‘추억’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사카린을 사용하는 곳이 많지 않다. 김 회장은 “식약처가 사카린의 안전성을 인정하고 사용 규제를 거의 풀었는데도 부정적 인식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JMC에 따르면 국내 사카린 사용량은 연간 1200t 정도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여온 저가 사카린으로 주로 동물 사료 등에 사용되고 있다.

김 회장은 사카린의 안전성이 세계적으로 입증됐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1977년 있었던 캐나다 실험은 3년간 100마리의 쥐에 사카린을 투여해 14마리에서 방광암 발생을 발견한 거예요. 근데 당시 사용된 사카린 양은 사람으로 치면 사카린이 함유된 음료 800개를 매일 섭취하는 양입니다. 실험 과정이 부적절했다는 거죠. 쥐에서 발생한 방광암은 사람과 쥐의 소변 성분과 삼투압의 차이로 사람에게선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도 훗날 밝혀졌습니다.”

김 회장은 오히려 사카린 섭취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열량이 없는 데다 혈당 지수가 ‘0’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설탕은 체내에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흡수되지만 사카린은 미각 세포만 자극할 뿐 대사작용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소변으로 배출된다”며 “설탕보다 300배 달고 가격은 30분의 1로 저렴하면서도 칼로리와 혈당 지수가 없어 당뇨병 환자들에겐 최고의 식품”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사카린에 항암효과가 있다는 논문도 국내외에서 발표되고 있다.

JMC, 매출의 90%는 수출

사카린이 ‘유해물질’로 의심을 받아온 이유 중 하나는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온 ‘콜타르’를 원료로 쓰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일반인이 보기에 콜타르는 석탄이나 석유로부터 나온 나쁜 물질이지만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 탄생한 사카린은 전혀 다른 유기물질”이라며 “인류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의약품인 ‘아스피린’도 콜타르를 원료로 개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인양행이 인수한 JMC는 지난해 매출 717억원, 영업이익 6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왔다. 수요가 계속 늘면서 울산 온산읍에 있는 공장은 최근 증설을 마쳤다.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60%가량 늘렸다. 온산공장은 6만여㎡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사카린 판매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그는 “국내에선 다른 감미료를 사용하지만 미국에선 코카콜라 다이어트 음료에 JMC가 제조한 사카린을 넣는다”며 “세계 2만8000t의 사카린 시장에서 약 2만4000t을 중국산이 차지하고 나머지를 JMC와 인도 업체가 나눠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산 사카린은 색상이 누렇고 불순물이 많이 들어 있는 반면 국산 사카린은 물로 3회 이상 정제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렘센·팔베르크법’으로 제조한 고순도 제품”이라며 “가격도 중국산보다 20~30% 비싸다”고 말했다.

고령의 그에게 남은 소망은 ‘사카린의 대중화’다. “JMC는 가만히 놔둬도 내실있게 성장할 회사입니다. 그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사카린의 누명’을 벗기고 싶습니다. 여러 곳에 사카린의 유용성을 알리고 다니는데 사실 이젠 지치기도 했어요. 사카린이 (국내에서) 잘되는 걸 보고 편안히 죽는 게 제 꿈입니다.”

사카린 小史
'기적의 단맛'→암 유발 '백색가루'→'달콤한 부활'…140년 부침의 역사


사카린

사카린

사카린은 1878년 러시아의 화학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인 아이라 렘센의 연구소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실험을 마치고 빵을 집어 먹다가 이상하게 단맛이 느껴지자 손에 묻은 흰 가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이듬해 팔베르크와 렘센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물질의 이름을 ‘사카린’으로 명명했다. 라틴어로 설탕을 뜻한다. 팔베르크는 1884년 사카린 제조법을 특허 등록하고 2년 뒤부터 상업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사탕수수로 만든 천연 설탕보다 훨씬 달고 가격이 싸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에선 사카린 안전성 논란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세계 1, 2차 대전이 설탕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놔 오히려 사카린 사용을 촉진시켰다. 1958년 미국에선 사카린이 함유된 분홍색 포장의 인공감미료 ‘스위튼로(Sweet’N Low)’가 출시됐다.

1977년 사카린의 운명이 바뀌었다. 캐나다 국립 보건방어연구소가 쥐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사카린을 먹인 수컷 쥐들에서 방광암이 발생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해 미국은 사카린을 발암 물질로 규정하고 사용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도 앞다퉈 사카린 규제에 나섰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캐나다 보건방어연구소의 실험 과정과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여러 연구가 이뤄졌다.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일 먼저 ‘사카린이 인체에 안전한 감미료’라고 발표했다. 1998년 국제암연구소(IARC)와 2000년 미국 독성물질프로그램(NTP)도 연이어 사카린을 발암 물질에서 제외했다.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간과 쥐(설치류)의 소변 생성 차이점 등을 지적하며 사카린에 대한 경고 문구 부착 제도를 폐지했다. 2010년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사카린을 유해물질 항목에서 삭제했다. 이후 유럽과 캐나다, 일본 등지에선 식품에 대한 사카린 첨가 규제가 서서히 풀리고 있다.

국내에선 1966년 5월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위장해 밀수입하다 부산세관에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불량한 물질’로 낙인 찍혔다. 이후 사용량이 점차 줄었고 해외 규제에 맞춰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나 2014년부터 사용 대상 품목이 확대됐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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