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下請)에서 횡청'(橫請)으로- 기업 수평적 협력의 시대 】① 기업간 수평적 협력 확대
창립한지 40년이 넘은 대구의 가정용 전열기구 기업인 보국전자(대표 이완수)와 발광다이오드(LED) 벤처기업인 반디(대표 이지훈)는 지난해 11월 협약을 맺었다. 오는 4월 출시하는 세계최초의 일체형 확산렌즈 기술을 접목한 캠핑용 LED랜턴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2000여개 유통채널을 가진 보국전자는 사업아이템을 확대했고 유통망이 없는 반디는 유통망을 확보하게 됐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DK, 광진산업, 인아, 현성오토텍 등 20개 중소기업은 서로 협력해 가전 완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들 기업은 삼성전자나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해온 기업들이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DK(대표 김보곤)는 태산테크 등 2개 기업과 협력을 통해 스마트레인지 후드 완제품을 올 상반기 출시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실내공기 오염도를 감지하고 환기까지 하는 지능형 제품이다.

대구와 광주, 울산, 경북 구미 지역 중소기업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을 통해 수주·발주를 하거나 공동연구를 하는 협력모델로 활로를 모색하고 나섰다.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일감이 줄어든 광주와 대구, 경북 구미 지역 중소(중견)·벤처기업 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유한 기술을 융합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과거 대기업 전속체제하에서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하청구조 대신 중견, 중소,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대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고 수평적으로 수주와 발주를 하는 협력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와 대구테크노파크 등 지방자치단체와 테크노파크 등 기업지원기관들도 신산업 육성과 지역 경제회생을 위해 이들 기업의 협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이호 대구시 경제기획팀장은 “중소기업 비중이 99%인 대구에서는 벤처·중소기업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산다”며 “기업간 협업정책을 올해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요한 대구테크노파크 창조기획실장은 "대구시의 신산업 육성 과정에서 10대 신산업분야별로 워킹그룹에 기업지원기관과 많은 중견 중소 벤처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라진 점은 기업들이 우수기술을 서로 공개하고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이라고 말했다.

경북 구미에서는 지난해 7월 부설연구소를 가진 중소·중견기업 98개가 구미부설기업연구소협의회를 창립했다. 20여년간 하청생산에서 다져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마트기기, IT의료기기, 첨단소재, e-모빌리티 등 6개 분과로 나눠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 형제파트너(대표 김정완)는 지난해 8월 탄소섬유 업체인 지유엠아이씨, 인쇄회로기판 업체인 LD전자 등 5개 기업과 공동으로 농업용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기 위한 법인(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김정완 대표는 “부품을 납품하던 기업들이 모여 전기농기계와 다양한 모듈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에서는 2015년 조선해양설계 및 관련 기자재업체 등 30개사와 울산산학융합본부가 참여해 조선해양 전문 종합설계사인 USOE를 설립했다. USOE 관계자는 “영세 중소기업 형태로는 수주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라 종합 설계회사를 설립했다”고 배경을 소개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으로 중소기업간 협력을 연구한 도건우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은 “중소기업간 협력은 일본에서도 하청(下請)에서 횡청(橫請)문화로, 덴마크 등 유럽에서는 중소기업간 ‘네트워크형 협력’으로 강소기업과 신산업 육성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며 “중소·벤처기업들이 협력을 통해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고 4차산업혁명에서 앞서갈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확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전국종합 okmook@hankyung.com

(사진설명) 김정완 형제파트너 대표(맨오른쪽)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연구원들이 협동조합 판매장에서 제품 개발 회의를 하고 있다. 형제파트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