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극대화' 걸고 32조원 운용…작년 삼성물산 합병 반대 이끌어

5일(미국 현지시간) 삼성전자 지배구조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블레이크 캐피털과 포터 캐피탈은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자회사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미국의 억만장자 폴 싱어 회장이 1977년 세운 헤지펀드다.

사명은 싱어 회장의 가운데 이름(Elliott)에서 따왔다.

지난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추진 당시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삼성과 '악연'을 맺었다.

삼성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 주식 0.35주와 삼성물산 주식 1주를 교환하는 합병을 결정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를 천명했다.

이어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합병 절차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법원은 삼성 손을 들어줬다.

당사자인 삼성으로서는 합병 성사까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지만 엘리엇의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주주친화정책의 기반을 마련하고 소액주주의 권익보장을 제도화하는 역할을 했다.

새 삼성물산은 거버넌스위원회를 두고 주주와의 소통, 주주권익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를 볼 때 엘리엇은 경영전략 변경, 사업부 매각이나 분사 등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편 등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분류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주가치 극대화'와 '공정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대체로 대량의 주식 매수를 통해 특정 기업의 주요 주주로 등재된 후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기업과 보유 주식의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전략을 편다.

엘리엇은 특히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급속도로 성장, 현재 운용하는 자산은 290억달러(약32조원)에 달한다.

엘리엇을 이끄는 싱어 회장의 순자산은 약 22억달러에 이른다.

싱어 회장은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자'로, 경제 영역을 넘어 동성애자 차별 금지 등 정치·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를 기술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국가채무에 대해 불이행을 선언한 이후에도 채무 조정 과정에서 감액을 거부한 채 채권 원금과 이자를 모두 내놓으라며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주목받았고 지난 7월에는 홍콩 동아은행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문제를 들고 나왔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 미국의 나스닥에 상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경쟁 기업들보다 저평가된 데다 최근 갤럭시노트7의 리콜 문제, 창업자 가문의 승계 등의 이슈 등에 직면한 점을 들어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노리는 교과서적인 예라고 분석했다.

엘리엇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공개 서한 말미에 "우리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매우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제안을 했다"며 "실제 주주가치 향상과 지배구조 투명성 개선을 바라는 진심이 삼성에 닿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