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해운회사채 6천억 투자…한진해운으로 1천600억 날릴 판
경기민감 상가 담보대출 주력…정치권은 비과세혜택 3년 연장해줘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비과세 혜택으로 상대적으로 세후 금리가 높은 상호금융권 예금에 꾸준히 돈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운용처를 찾지 못한 상호금융사들이 고금리 해운사 회사채에 '묻지마'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입거나 경기민감도가 높은 비주택담보대출에 '몰아주기'를 하고 있어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통계를 종합하면 신협, 새마을금고, 지역 농축수협·임협 등 상호금융권의 수신 잔액(말잔 기준)은 작년 말 454조원에서 올해 6월 말 471조4천억원으로 3.8%(17조4천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1.9%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2배나 빠른 증가 속도다.

2015년 한 해를 비교하더라도 은행 정기예금은 저금리 여파로 1.5%(8조4천억원) 줄어든 반면, 상호금융권은 수신액이 6.5%(27조7천억원)나 늘었다.

자금이 시중은행에서 상호금융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상호금융권 수신이 늘어나는 것은 비과세 예탁금 덕이다.

20세 이상 성인은 상호금융권 예적금 3천만원까지에 대해 이자소득세 15.4%를 면제받을 수 있다.

대신 농어촌특별세 1.4%만 부과된다.

정부가 다른 금융상품과의 형평을 맞추고자 지난해 비과세 혜택의 단계적 축소를 추진했지만, 국회는 세제혜택을 오히려 2018년 말까지로 3년 연장했다.

문제는 저금리 기조 속에 상호금융사들이 몰려든 자금의 마땅한 운용처를 찾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부분 단위 상호금융 조합은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제대로 된 자금 운용능력을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투자처가 알려지면 단위 조합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수년 간 고금리로 발행된 해운사 회사채를 사들인 것도 상호금융기관들이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상호금융권은 400여개 조합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공모회사채 약 6천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조합별로 보유한 해운사 회사채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규모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상선 사채권자들은 앞서 채권액 50% 이상을 출자전환하고 잔여 채무를 분할상환하는 내용의 채무 재조정안에 동의한 바 있다.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한진해운 회사채 보유 기관들은 청산 절차에 돌입할 경우 투자금 대비 극히 일부만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에서는 상호금융권이 보유한 한진해운 회사채가 1천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위 조합당 평균 6억~7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운업종 구조조정으로 최대 투자자인 신용협동조합이나 지역 단위 농협 등 상호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호금융권으로의 예금 유입은 가계부채 관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증가액은 2012년 8조8천억원, 2013년 13조5천억원, 2014년 20조1천억원, 2015년 22조4천억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왔다.

은행권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 달리 비은행권에서는 토지, 상가, 오피스텔 등의 비주택 담보대출 위주로 대출량이 급증한 것이 특징이다.

2012∼2015년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2%에서 20%로 줄어든 대신, 비주택담보대출 비중은 68%에서 80%로 늘었다.

상호금융권이 토지·상가 담보대출에 집중하는 것은 그 외에 마땅히 대출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호금융권 관계자는 "지역단위 소규모 상호금융 조합은 신용대출을 할 만한 신용평가 능력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담보대출 위주로 대출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권 LTV·DTI 규제완화로 상호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메리트가 사라지다 보니 결국 할 수 있는 대출은 토지·상가 담보대출밖에 남지 않았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토지·상가 등을 담보로 한 대출은 부실률이 일반 주택대출보다 경기변동에 크게 민감한 편이다.

또한 분할상환·고정금리 비중이 여전히 낮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거나 금리 인상 등으로 경기 변동이 오면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정부도 이같은 위험을 인지하고 지난 8·25 가계부채 대책에서 상호금융권 비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한도(LTV)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상호금융권이 무리한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주요 배경에 비과세 혜택에 따른 예치금 증가가 자리잡고 있지만 제도 개편은 요원한 분위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금융상품의 비과세 혜택을 종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금융권 예치금 비과세도 단계적 일몰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상호금융권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 보니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