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안츠 "자본잠식 상태 아니다"

안방보험에 인수되는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이 예상보다 크게 낮은 35억원 정도의 가격에 매각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방보험 측 관계자는 7일 "안방보험과 알리안츠생명이 6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300만 달러의 가격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300만 달러는 원화로 약 34억8천만원 수준으로, 애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2천억~3천억원의 수십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1999년 제일생명을 인수해서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설립했고, 이 법인에 증자 등을 포함해 약 1조3천억원을 투자했으나, 사실상 투자금을 거의 다 까먹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됐다.

이 관계자는 "가격은 양측이 합의해서 결정한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자산이 16조6천510억원으로 생명보험업계 11위에 해당하는 기업이 '헐값'에 팔려나가자, 보험업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알리안츠생명의 재무상황이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알리안츠생명은 지난해 8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시장에서 알리안츠그룹은 지난해까지 2억4천400만 유로(약 3천210억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자본잠식 상태여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900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 15조7천억원으로, 총자산에서 차감하면 1조원이 남는다"며 "이는 최소 지급여력 유보치의 1.8배로, 자본잠식 상태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생명보험업계가 2020년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을 앞두고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거론된다.

새 기준에서는 보험부채를 평가하는 방식을 원가에서 시가평가로 전환해야 하는데, 과거 고금리 시절 금리확정형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일수록 추가로 자본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자본 확충 부담까지 겹치면서 외국계 보험사들이 국내 보험시장 잔류 여부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출구전략을 잇따라 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확충이 필요하고 노조 문제와 영업부진 등 그동안 시장에 익히 알려진 것만으로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안츠생명은 2008년 234일간의 장기 파업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가격 실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낮은 가격에 매각이 이뤄진 만큼, 독일 알리안츠그룹의 사정에 따른 결정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너무 낮은 가격이라 알리안츠생명만의 문제로 산정이 이뤄졌을 것 같지는 않다"며 "알리안츠그룹이 아시아 지역의 영업을 재조정하는 등의 전체 전략을 짜는 차원에서 낮은 가격에라도 '털고 나가려' 한 것 아닐까 싶다"고 예측했다.

외신에 따르면 올리버 베츠 알리안츠그룹 최고경영자(CEO)는 그동안 계열사들에 자기자본이익률 10% 이상을 달성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지키지 못한 회사들은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알리안츠생명이 낮은 가격에 매각된 것은 앞으로 진행될 생명보험사들의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업계에서는 ING생명, PCA생명, KDB생명 등이 인수합병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ING생명만 해도 매각가가 2조5천억원 안팎이 되리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알리안츠생명의 가격이 너무 낮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중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옴으로써 인수합병 시장에서 우리 보험사들의 가치가 높아지리라 기대했는데, 반대 상황이 되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