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불투명한 회계 관행…업계 "취지 공감하나 당장은 부담"

금융당국이 조선·건설 등 수주업종의 회계 방식에 손을 대고 나선 것은 최근 잇따른 분식 의혹 때문이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3년∼2014년 5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일시에 발생한 상장법인은 총 36개사다.

특정 시점에 원가 상승분을 일시에 인식하는 등 갑작스레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회계절벽'이 초래된 것이다.

특히 조선과 건설 등 수주업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 3조여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3분기에도 1조2천억여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지난 7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 내부에서 원가율을 낮춰 영업이익을 부풀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대우건설은 감리 착수 이후 1년9개월만에 증권선물위원회에서 3천8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혐의가 확정되며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금융당국은 경기에 민감한 조선·건설의 업종 특성에 불투명한 회계처리 관행이 겹쳐 이 같은 문제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건설업종은 공사가 장기간 이뤄지는 만큼 공사기간 중 여건 변화에 따른 손익 변동이 크게 나타난다.

국내외에서 치열한 수주 경쟁에서 비롯된 과도한 저가 수주도 수익성 악화에 일조했다.

느슨한 회계 처리 방식도 문제다.

다른 업종의 경우 물건 등을 판매(인도)한 시점에 수익이 인식되지만 건설 등 수주산업은 '공사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인식한다.

진행률은 총예정원가 대비 실제 발생원가로 산정하고, 여기에 계약금액을 곱하면 당기순익이 집계된다.

이중 총예정원가는 추정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동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바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공사진행률과 수익이 과대·과소평가 될 수 있다.

반면 공사진행률이 실제 공정률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지 등 사업장별 리스크 정보는 충분히 공시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역시 과대평가된 수익이 누적됐다가 특정 시점에 손실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각 기업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의 진행기준에 의한 수익·비용 인식 규정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관행도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업계의 고질병이 잇따라 불거지자 지난 9월 초 금감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회계기준원 등 관계기관 및 전문가와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해 대책을 마련했다.

금융위 등은 이날 내놓은 회계투명성 제고 방안을 통해 수주업종 내 합리적인 회계 처리 문화가 정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욱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수주산업의 자의적인 회계처리가 줄어드는 한편, 회계·리스크 정보 공시 확대로 투자자 보호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건설업계에서는 회계 처리 관행이 개선돼야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업계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대형 건설회사의 회계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계기로 업계 신뢰성 제고와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길 바란다"면서도 "아직 인프라나 업계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당장 현실에서 따라갈 수 있을 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 연결 등이 원활하지 않은 해외 현장의 부문별 예정원가 변동 내역 등을 그때 그때 반영하려면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금융당국이 제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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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gogo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