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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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이 결국 좌초했다. 대기업그룹이 무너진 것은 STX그룹에 이어 올 들어서만 두 번째다. 두 그룹으로선 아쉬움이 많을 법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이라든가, ‘채권단이 조금 더 도와줬다면…’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두 그룹은 닮았다. 이미 2년 전 자금사정이 악화된 점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미적미적한 점도 비슷하다. 이후 채권단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요구 등으로 자산 매각에 나섰지만 경영권 등에 집착하다가 실기한 점도 닮은꼴이다. 막판에 몰려서야 돈되는 자산을 팔려고 내놨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점도 비슷한 과정이다. 구조조정본부장이 너무 자주 바뀌는 등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없었다거나, 경영권에 집착하는 오너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결국 선제적 구조조정에 실패한 두 그룹은 해체 과정에 들어섰다.

◆경영권 집착하다 구조조정 시기 놓친 S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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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그룹은 작년 5월 재무구조 안정화 계획을 수립했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 이미 시장에 알려진 뒤였다. 그해 6월에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발전사업을 가진 STX에너지와 해외사업 법인인 STX유럽, STX OSV, STX프랑스 야드 등을 매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STX에너지의 경우에도 처음엔 경영권을 유지하되 일부 지분만 일본 오릭스에 매각했다. 자금사정이 악화된 올 7월에 나머지 지분을 쫓기듯 부랴부랴 넘겼다. OSV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7월 초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에도 인수합병(M&A) 과정에 주가가 상승하자 블록딜을 추진했다. 자연스럽게 매각대금을 받는 시기도 두 달가량 늦어졌다. 캐시플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STX프랑스 매각은 크루즈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추진하지 않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그룹의 자금사정 악화를 경영진이 초기에 과소평가한 탓에 경영권까지 매각하는 데 주저했다”며 “작년 12월부터 급격히 돈줄이 마르자 그때서야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등 마음이 급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때부터는 협상력을 상실해 매각 등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매각 시기를 놓친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STX다롄도 마찬가지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2007년 중국 다롄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조선소를 세웠다. 그러나 곧이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불황이 지속되고 해운업황이 살아나지 못한 채 6년가량이 지났다. 채권단은 작년 11월 STX다롄에 2014년까지 1조원가량 유동성이 부족해 부실화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지난 1월 오히려 국내 계열사의 돈으로 STX다롄에 2300만달러 증자를 실시하는 등 지원을 지속했다.

◆구조조정 계획만 있고 실행은 없었던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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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의 자금난이 악화된 과정도 STX그룹과 닮았다. 동양그룹은 2011년 KB금융지주가 동양증권을 사겠다는 뜻을 보였을 때 가격 차이로 협상을 중단했다. 또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 대규모 계열사 정리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2013년 상반기까지 현금 2조원 등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매물로 거론되던 사업부는 가전(동양매직), 섬유(한일합섬), 레미콘, 파일, IT사업부 등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매각에 성공한 것은 동양시멘트의 선박(350억원), (주)동양이 보유한 부산 냉동창고(345억원), 레미콘 공장(830억원) 등 비핵심 자산뿐이다.

동양그룹은 파일사업부와 IT사업부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동양그룹은 당초 파일사업부를 매각해 1500억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했지만, 1170억원을 받고 동양시멘트 자회사로 사업부를 이전했다. 대신 채권 발행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동양그룹은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의 주력 사업인 IT서비스 사업부문을 한국IBM에 팔기로 하고 자본유치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검토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중단했다.

올초엔 갑을상사에 400억원을 받고 한일합섬을 매각하기로 했지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사소한 보증문제로 결렬됐다. 동양매직 매각은 우선협상대상자가 교원그룹에서 KTB 컨소시엄으로 왔다갔다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KTB PE 측에서 동양네트웍스의 재출자(600억원) 등 경영권 일부 유지 조건을 제시한 것이 원인이었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없거나 금융권의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동양그룹은 작년 3월부터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까지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전략기획본부장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2012년 3월 이전까지는 서동원 전 동양증권 부사장이 맡았고, 이후 구한서 전 동양네트웍스 부사장이 2주가량 지낸 뒤 갑자기 교체됐다. 2012년 3월부터는 황현택 전 동양증권 부사장이, 2012년 말부터는 김동훈 전 동양파이낸셜대부 대표가 맡았다. 올해 8월부터는 김윤희 전 동양파이낸셜대부 대표가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동양그룹 고위 관계자는 “컨트롤타워를 총괄 지휘하는 전략기획본부장이 업무를 파악하기도 전에 자주 바뀌었고, 계열사 매각 등에서는 제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룹 위에 핵심 경영의사를 결정하는 비선조직이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동양그룹 구조조정을 진짜로 진두지휘한 사람은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라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STX그룹은 강 회장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STX그룹 관계자는 “그룹이 위기에 처할수록 고언을 하는 사람은 자리에서 밀려나고 오너의 입맛에 맞는 몇 사람만 남아 ‘인의 장벽’을 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들이 기업 경영자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게 막는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상은/안대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