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새벽(한국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폐막한 제7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내년까지 타결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함에 따라 DDA 협상의 급진전이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협상의 키를 쥔 미국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과의 접점찾기도 난항이 예상돼 교착상태를 벗어나긴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2008년 7월 일부 핵심쟁점을 제외하고 회원국간 상당한 수준의 의견 수렴이 이뤄질 정도로 가지치기가 이뤄진 상태여서 미국의 결단 여하에 따라 새로운 무역규범으로서 급속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8년 끌어온 DDA..난항의 연속
DDA는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출범했다.

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9번째, 1995년 WTO 출범 이후 첫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출범 당시 협상을 3년 이내에 종료하고 2005년 이전에 일괄타결 방식으로 끝내겠다는 목표였지만 8년째 난항을 거듭하며 타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농산물과 비농산물의 관세감축, 농업보조금 감축에 대한 선진국(미국, 유럽연합)과 개발도상국(중국, 브라질, 인도) 간 협상이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소규모 각료회의에서는 농업 및 비농산물 시장접근 세부원칙에 대해 일부 잔여 핵심쟁점을 제외하고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지만 이후 협상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은 현행 다자간 협상과 함께 양자협상을 통해 협상의 구체적 이익을 따져보자는 `투트랙 접근법'을 주장했지만 개도국 그룹은 이 경우 양자협상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을 우려해 양자협상에는 반대하고 있다.

DDA가 `개발 라운드'라는 이름처럼 개도국.최빈개도국의 성장을 돕는 쪽으로 무역규범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출범했지만 치열한 강대국 간 주도권 다툼으로 오히려 최빈개도국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협상 키쥔 미국 입장이 변수..내년 1분기 최대고비
이번 각료회의는 2005년 12월 홍콩 이후 4년여 만에 개최됐지만 당초부터 DDA 협상의 급진전을 점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DDA 문제가 각료회의 정식의제로 포함되지도 않았다가 개도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따라 각료회의 의장 요약문을 통해 "협상을 조기에 타결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갔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협상의 키를 쥔 미국의 입장 변화가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비관론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 미국 측은 이번 각료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진전된 언급을 내놓지 않을 정도로 미온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수립 이후 미 무역대표부(USTR)의 부대표 인준조차 되지 않았고 DDA 협상 전권을 얻어내기 위한 행정부 차원의 법안 준비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반증한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 금융위기 해소가 가장 큰 현안이었고 이후에는 의료보험 개혁 등 국내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데다 내년에도 미 의회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어 여력이 많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미국 내부적으로 협상 결과에 대해 내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많지 않다는 비판론에 직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 문제가 세계적 화두로 등장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이 이 문제를 DDA의 정식의제로 꺼낼 경우 수세적 입장인 개도국이 반발해 협상의 여지를 더 좁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속됐다면 오히려 위기 해소 차원에서 조속히 DDA를 타결하자는 여론이 높아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조기 타결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겠지만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이 협상 타결에 강한 의지를 보일 경우 이번 각료회의에서 제시된 일정처럼 내년 1분기까지 협상 로드맵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서진교 연구조정실장은 "DDA 전망에 비관론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상당 부분 합의가 도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협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2일 제네바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내년 1분기가 고비가 될 것"이라며 "내년 3월말까지 협상 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2010년 시한 내에 협상을 타결짓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