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이 열린 지 1년이 지난 2009년 8월.베이징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듣던 것과 다르네"라는 것이다. 뿌연 스모그나 웃통을 벗고 활보하는 사람들로 상징되던 베이징은 없어졌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볼 수 있는 날이 흔해졌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긴 줄이 만들어지고 있다. 담배천국이었던 이곳에서 공공시설과 택시 안 금연이 실시됐다. 상체를 완전히 노출한 채 돌아다니는 남자들도 적어도 시내에선 찾아볼 수 없다. 올림픽을 전후로 베이징의 풍경은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톈안먼사태 발생 20주년 등 올해 유달리 정치적 사건이 많긴 하지만 통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히려 인터넷까지 단속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이 완전히 변화할 것이란 기대는 절반만 충족된 셈이다. 지난 1년에 점수를 매겨 메달을 준다면 '반쪽짜리 금메달'일 게 분명하다.

◆하늘 맑아졌지만 하천엔 다시 악취도

베이징시 환경국은 최근 지난 상반기에 총 181일 중 146일이 란톈(藍天 · 파란하늘)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시가 목표로 했던 130일을 훨씬 초과했다. 중국 통계에 대한 불신이 높지만 올해만큼은 믿을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노후된 자동차를 단속하고,석탄으로 난방하던 것을 가스로 교체하면서 공기가 맑아졌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선진국처럼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지난달 22일 중국 국가환경총국은 PM 10(직경 10마이크론 이하의 미세 먼지)이 ㎥당 103마이크로그램 함유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WHO(국제보건기구)의 허용치인 50마이크로그램의 두 배 이상이다. 그러나 눈이 따가울 정도로 스모그가 뒤덮여 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천지가 개벽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냐다. 베이징 3환로 근처를 흐르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양마허.작은 개천에 불과하지만 작년 올림픽이 열릴 때는 낚시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더럽던 이 하천은 올림픽을 앞두고 대수술을 했다. 베이징시는 하천바닥을 긁어낸 뒤 비닐을 덮고 맑은 물을 흘러보냈다. 물고기가 보이기 시작했고 강태공들이 양마허주변에 몰려들었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은 '도루묵'이 됐다. 물은 다시 초록색 이끼로 뒤덮였고,악취를 심하게 풍기고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독일인 반 크루만씨(45)는 "올림픽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러나 정부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엔 선글라스 물결…의상도 컬러풀

작년 올림픽 직전 베이징의 택시엔 운전사 10개 행동지침이란 게 붙었다. 머리를 감자,옷을 갈아입자,차안에서 밥을 먹지 말자 등등의 구호는 당시 베이징의 시민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베이징의 택시는 크게 달라졌다. 운전기사들은 노란색 제복을 깨끗하게 착용하고,올림픽 직전에 실시된 택시 내 금연 정책 등으로 냄새도 많이 사라졌다.

아무데서나 U턴을 하던 차들도 눈에 띄게 없어졌다. 거리마다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덕도 있지만,사람이 다니지 않는 건널목에서도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하는 차가 증가된 것을 보면 교통문화가 성숙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중국 런민대학이 올림픽을 앞두고 시민들의 행동양식을 조사해 발표한 에티켓지수는 올림픽기간 중 82.6을 기록했다. 이는 100명 중 83명이 시민으로서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2005년에 65.2에 불과했으나 해를 거듭할 수록 높아져 올림픽 전해인 2007년엔 73.4에 달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올림픽 이후엔 조사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시민의식은 이렇게 도약했다.

거리의 복장에서도 올림픽 트렌드가 읽혀진다. 베이징 시단 인근의 안경점인 밍안경의 종업원은 "올림픽이 열린 뒤 일반 안경보다는 선글라스의 판매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며 "올림픽 때 외국인들이 대부분 선글라스를 착용했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검은색이나 회색 등 어두운 빛깔의 옷이 주류를 이루던 시민들의 복장도 다양한 색채로 변하고 있다. 올림픽 때 베이징을 찾았던 많은 외국인들의 패션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한 의류판매상은 말했다.

◆이루지 못한 '하나의 꿈'

베이징 올림픽의 구호는 '하나의 꿈,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안에서는 이 구호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올해 크고 작은 민족분규와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시위가 크게 증가한 게 이를 보여준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유혈폭동이 일어난 것은 물론 빈부격차와 관리들의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의 화려함은 상대적으로 소수민족과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감을 더 강하게 만들었고 올해 유독 반정부시위가 많아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홍콩 현대중국연구소 찰스 후 소장).그러나 이들의 반정부 시위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폭정이나 불합리에 대한 항의성 집회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사회 · 정치적 민주화가 덜 돼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국민들의 불만이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오히려 정치적 탄압의 강도는 더해지는 느낌이다. 불순한 정보를 차단한다는 구실로 인터넷이 통제되고,인권운동가들이 연행되는 등 정치적 발전이 아닌 정치적 퇴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전한 올림픽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손님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택시마다 설치했던 무선마이크도 올림픽이 끝난 뒤 1년이 지나도록 철거되지 않고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