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오바마니아(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열광)'가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이후 한풀 꺾였지만 적어도 G20(주요 20개국) 정상들 사이에서는 몇 개월 전의 열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회의 후 오바마 대통령의 겸손, 치열함, 진실성, 열린 자세 등을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번 회의에서 도출된 '역사적 합의'도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이라면 결코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며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한 오바마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회의 전 앵글로색슨식 금융시장의 '해악과 재앙'을 지적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오바마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 협력함으로써 '아주 훌륭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 대통령은 좋은 결과를 얻는 데 특별한 관심을 뒀고 아주 세밀한 문제의 해결에도 관여했다"면서 "매우 훌륭하고, 협력적이며 결과지향적인 협의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미국의 추가 경기부양 요구와 관련해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47세인 오바마 대통령은 공식 기념촬영에서 큰 누나뻘인 메르켈 총리를 팔로 감쌌고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은 뒤 함께 미소를 짓는 등 급격히 친밀해진 분위기가 역력했다.

회의 전 조세피난처, 헤지펀드 등 금융시장 규제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회의장을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이 '아주 개방적인 사람'이라면서 특히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 공개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중국을 설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했다.

사르코지에 따르면 오바마는 회의 막판 마지막 남은 난제였던 조세피난처 공개 문제를 놓고 프랑스와 중국의 입장이 맞서자 사르코지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차례로 회의장 구석으로 불러내 합의를 이뤄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닌 중국은 OECD의 조세피난처 리스트를 G20이 승인하는 것에 반대했다.

오바마는 회의가 예정된 시간을 넘겨 진행되는데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사르코지에게 개별적으로 얘기를 나누자는 신호를 보낸 뒤 코너에서 통역사만 대동한 채 몇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고, 뒤이어 후진타오에게 그중 한 가지 안을 메모로 전달했다.

후진타오 주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그를 구석으로 불러내 설득했다.

마침내 세 정상들은 보좌관, 통역사들을 대동한 채 구석에 함께 모여 'OECD의 리스트에 유의한다'는 문안으로 타협을 이뤄낸 뒤 악수를 했다.

곧이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회의 종료발언을 요청했고 오바마가 이번 회의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자 회의장에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이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서 '나의 새로운 동지'라고 불렀다.

메드베데프는 오바마가 미사일방어(MD) 문제와 관련해 실수를 저질렀던 전임자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그는 대화하기도 쉽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고 평가했다.

그는 "양국 관계의 시작이 좋다"면서 "오늘은 (부시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칭찬세례에 화답해 오바마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겸손함과 친근감을 과시했다.

그는 회의 중간 오찬 중 룰라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며 "바로 여기 내 사람이 있군요.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영어를 몰라 어리둥절하게 서 있던 실바 대통령은 통역사가 내용을 설명해주자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오바마의 손을 꼭 쥐었다.

오바마는 곧바로 실바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라면서 "그가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