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8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미국 오토바이의 대명사 할리 데이비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혼다,스즈키 등 일본계 회사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 점유율이 5%까지 떨어지면서 도산 위험에 처한 것이다. 결국 정부의 보호 관세에 힘입어 극적으로 도산을 겨우 면한 이 회사는 이후 고객 관계(CM) 강화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40% 이상 유지하면서 2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로 회생했다.

지금은 고급 대형 모터사이클의 상징으로 알려진 할리 데이비슨은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을 훌쩍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마니아 층이 형성될 만큼 충성도 높은 탄탄한 수요층을 갖춘 명품으로 자리잡았다.

할리 데이비슨의 당시 기업 위기극복 전략은 한마디로 정서적 고객 관계의 강화였다. 고객 커뮤니티와 소비자 참여 행사를 통해 고객과 브랜드의 일체감을 제고했고,이렇게 형성된 일체감은 고객들의 자발적 제언,추천 및 충성도로 이어졌다. 신상품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이 고객으로부터 나왔으며,광고비가 총 매출액의 1%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통해 활발한 홍보가 이뤄졌고,고객의 재구매율은 95%가 넘을 정도로 고객 관계 강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 CM강화 전략을 최근 전 세계적 실물경제 침체에 빠져있는 기업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업 위기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 극복 전략의 효과를 논할 때 중요한 것은 기업 위기의 본질이다. 80년대의 할리 데이비슨이 겪은 위기의 본질은 고객과 브랜드의 정서적 관계의 단절이었다. 이는 경제 전반의 상황과 무관한 기업 특유의 위기였다. 이를 위해 브랜드 정체성의 확립,그리고 브랜드-고객과의 일체감 확보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었다. 당시에는 소비자의 경제적 지불 능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기업 위기의 본질은 경제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과 소비자들의 경제적 지불능력의 위축이다. 이는 특정 기업의 위기라기보다는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이다.

이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의 CM강화 전략은 고객에 대한 '정서적 가치'의 제공보다는 '경제적 가치'의 제공에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 불황으로 확산되고 있는 요즈음 기업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단기적인 이익의 극대화에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악화시키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불황기일수록 장기적으로 CM을 강화하고 지금의 위기를 후일의 기회로 만들기 위한 CM마케팅이 필요하다. 가령 미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진행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마케팅은 고객에게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고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을 경감시켜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동차를 고객에게 공급하되,구매 고객이 실직할 경우 할부 제품의 반환을 가능케 해준다거나,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자동차 할부금 납부를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 제도 등은 고객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고객 관계를 강화하려는 마케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불황기의 시장은 고객에게 핵심 제품을 저가에 공급하거나,가격 선택 옵션을 다양화하거나,장기 임대 등을 통해 고객의 지불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기업의 마케팅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는 순환한다. 기업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공은 CM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진행되는 긴박한 경제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고객의 경제적 욕구를 직접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장기적 CM강화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