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의 강도 높은 개입으로 1600원 턱밑까지 치솟았던 원 · 달러 환율이 3일 하락 반전하며 1500원대 중반에 거래를 마쳤지만 기업을 비롯한 외환 수요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9원70전 뛰어오른 1590원으로 거래가 시작된 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은 흐름이라는 것이 있으니 한 방향으로만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 등이 작용하면서 급속한 조정을 받았다.

◆외환당국,"투기세력 주시" 경고

외환당국자는 "2월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33억달러에 이르고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한국의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폭이 다른 국가보다 큰 것은 지나친 쏠림현상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며 조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날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이 2015억달러로 1월 말 대비 2억달러 감소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외환시장에 일부 투기세력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한 은행 외환딜러는 "전날 당국의 개입물량이 5억~6억달러 수준으로 파악되는데 오늘은 이보다 약간 더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시장에선 전체적으로 당국 매도물량이 7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환율 1600원은 과도하다는 당국의 인식이 확인된 만큼 당분간 1500원대 중 · 후반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체들도 '외환 비상'

최근의 급속한 환율 급등 행진으로 인해 대표 제조업종인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최대 철강회사인 포스코는 조만간 대규모 외화채권을 추가 발행해 외화를 끌어모으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철광석 · 유연탄 등 원료 수입 결제용 달러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수출 물량이 줄면서 사내 달러 보유량에 '미스매치'가 일고 있는 탓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과 12월에 각각 200억엔,500억엔씩 사무라이 채권을 발행했었다.

포스코가 철광석,유연탄 등 원료 구입과 운용 비용으로 결제해야 하는 달러 수요는 하루에 3000만달러 정도에 이른다. 보통 7일치 안팎의 여유 외화대금(3억달러 정도)을 갖고 있지만 최근 환율이 연이어 급등하면서 사내 달러 보유량이 급격히 감소,재무팀이 직접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입해 외화대금 보유량을 맞추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철광석(연간 6000만t),유연탄(연간 3000만t) 등 원료 비용으로 들어가는 달러 수요가 늘고 수출 대금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이 같은 '미스매치' 현상으로 부족한 외화대금 규모만 7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 반제품인 슬래브를 수입해 연간 260만t의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을 생산하는 동국제강도 국제 슬래브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 · 달러 환율이 높아져 원가 부담이 더 커졌다. 현대제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유업계,"환율 100원 오르면 환차손 8000억원 발생"

외화 부채가 많은 정유 및 항공업계 등은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올해 원 · 달러 평균환율을 1200원으로 예상한 대한항공은 환율이 100원 상승하면 이익은 2000억원 줄어든다. 같은 조건에서 아시아나항공도 이익 780억원 감소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원 · 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섰기 때문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기존에 예상했던 손실보다 3~4배에 가까운 환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도 마찬가지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의 외화표시 부채는 총 80억달러 수준.원 · 달러 환율이 100원 오르면 80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하는 구조다.

장창민/김인식/이정호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