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출입 제한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 통상.농정당국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틀째 협상이 끝난 14일(현지시간) 양측 대표들이 함구로 일관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분위기만 파악할 수 있을 뿐, 과연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았는지를 가늠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다만 김종훈 본부장의 협상 상대인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16일 오후(현지시간) 미.중 전략대화 참석을 위해 메릴랜드 주(州) 아나폴리스로 이동해야 돼 15일 하루 협상을 쉬기로 한 점은 무엇인가 1차 결과물이 나왔을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김 본부장의 출발 전 "17일께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여당의 발언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양국 정부 관계자들은 "17일 타결될 지는 알 수 없다", "협상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open-ended)" 등의 표현을 쓰며 협상장 밖의 기대 수위를 낮추려 애쓰는 모습이다.

◇ 수출증명 프로그램 놓고 옥신각신 하는 듯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협상 방침이 거론된 이후 "문제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는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따라서 워싱턴 협상의 핵심은 미국 정부가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출을 어떤 방식으로 증명해 줄 수 있느냐지만 이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로서는 자율규제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행 쇠고기 작업장에 '30개월 미만' 조건의 강제성을 띤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적용해주는 것이 최선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자신들이 국제수역사무국(OIE) 지침을 내세워 관철한 수입위생조건을 두 달 만에 완전히 뒤집는 것일뿐 아니라 일본,대만 등 다른 수입국과의 협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미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증명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있다.

따라서 현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의 부담을 덜면서도 실질적으로 EV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수 있는 묘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아닌 미국 민간 육류수출업계가 스스로, 자신들이 마련한 '30개월 미만' 조건의 한국 EV 프로그램을 미국 정부에 제출하고, 미국 정부는 실제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방식 등의 대안 등도 정부 안팎에서 거론된다.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은 미국 농무부가 각 나라와 맺은 수입위생조건에 맞는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작업장을 감독하는 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4.18 합의'로 한국에 수입될 수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범위가 '미국 연방 육류검사법에 기술된 소의 모든 식용부위와 모든 식용부위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별도의 '한국 EV 프로그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국내 반대 여론을 반영,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일단 '30개월 미만' 조건을 담은 한국행 EV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방안을 미국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개입 티 안내기'도 안갯속
30개월령 이상을 막아내는 문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문제는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정부의 조치문제다.

만약 미국이 EV 프로그램을 강하게 시행해달라는 우리 측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다면 자율규제에 대한 별도의 정부 보증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월령 규제를 민간업계의 자율에 맡긴다면 '촛불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실효성 있는 담보가 마련돼야 하고 정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정부가 업계 간의 자율규제를 구속력 있는 문서로 보증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정부 측은 "너무 정부개입의 티가 난다"며 주저하고 있다.

협상 출발 하루 전 김 본부장이 긴급 브리핑에서 "정부가 문서로 보증할 경우 정부의 관여가 드러나 국제통상규범에 어긋나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고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고 언급한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공동 선언' 형식이나 정부의 흔적이 너무 남지 않는 비구속적인 보증이 이뤄진다면 국내 여론을 만족시킬 수 없어 정부로서는 힘겨운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티나게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자율규제에 공식적으로 개입해 세계무역기구(WTO) 통상 규범을 위반할 수 있다"면서 "김 본부장의 말대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해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내비쳤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신호경 기자 jsking@yna.co.kr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