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 문제는 집값 안정에만 초점이 가 있었지만 이제는 고령화 추세에 대응해 새로운 개념의 주택 정책을 펴야할 시점이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제 정책포럼 둘째날인 14일 '노인 주거정책' 세션에서는 발표자들 모두 한국도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대응해 노인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주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와 가장 사회문화적 환경이 비슷한 일본의 사례가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히로토 이즈미 일본 국토교통성 주택국 심의관은 '일본 고령자 거주의 과제와 주택정책의 대응'이란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일본에는 넓은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살기 좋은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하는 노인들과 넓은 주택을 원하는 다자녀 가정을 이어주는 주택 교환시장이 활성화 돼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출자한 비영리 임차인 조합이 노인들로부터 큰 집을 임대받아 이를 다자녀 가정에 다시 임대해주는 방식이다.

노인 가정은 임차인 조합을 통해 받은 임대료로 자신들이 원하는 집(정부가 마련한 노인 전용 임대주택 등)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때 일본 정부는 노인들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취득 및 등록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준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 같은 사례에 대해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집 소유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한국에서는 좋은 집을 보유하고 있다면 나중에 자식들에게 상속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 일본처럼 집이 복지의 수단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 고령자 주거 환경을 논의할 때 고령자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신영 대한주택공사 연구원은 "노인들은 보통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다"며 "노인들의 집을 살기 편하게 고칠 수 있는 지원 체제를 마련해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우리 정부는 1988년에 노인과 자녀들이 함께 살 수 있는 3세대 동거형 공공임대 주택 360호를 공급했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며 "2008년이면 노인 전용 임대주택이 800세대가량 건설되지만 앞으로 이러한 노인 전용 공공주택을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성규 중앙대 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정부는 저소득 노인이 손쉽게 공공임대 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임대료를 깎아 주거나 여러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주택 문제만을 독립적으로 떼어 내어 생각해서는 안되며 노인 병원과 의료보험 등 여러 노인 복지 문제와 결부시켜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벵트 터너 유럽주택연구 네트워크 회장은 '스웨덴의 주택정책'이란 주제발표에서 "현재 스웨덴의 주택에 대한 주된 흐름은 노인들이 살던 주택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도록 하는 것"이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러한 활동이 잘 이루어지도록 보조금 등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경우 시 정부는 노인 주택과 주거비를 제공하는 책임을 지고 주 정부는 노인들의 장기요양이나 의료보험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 있다.

즉 노인 주택 부문은 시 정부가,복지 부문은 주 정부가 나누어 맡고 있다.

안테 팅커 런던 킹스 대학 교수는 "영국 중앙 정부는 노인 주거 정책만 결정하고 직접적인 주거 지원 활동은 지방 정부가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팅커 교수는 한국과 영국의 생활 환경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사항들은 한국도 적용해 볼만하다고 조언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