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밤 노무현 정부의 2기 경제팀 수장으로 임명된 뒤 "개혁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고 일성(一聲)을 터뜨린 이헌재 신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성장노선'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경제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경제운용의 최우선 과제로 '성장'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쳐낼 것은 쳐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11일 배포한 취임사에서 "새로운 시스템과 질서에 부합하는 새로운 법과 원칙이 정착될 때까지는 기존 법과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말해 정책운용에 당장 급격한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시장 참가자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혀 앞으로 '시장의 심판자'로서의 정부 권위를 세워 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금융시장 '군기잡기' 나설 듯 이 부총리는 이날 취임사 앞부분에서 "강한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대적인) 흐름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돼 (재경부 직원) 여러분 앞에 다시 서게 됐다"는 언급은 총체적인 경제난에 빠져든 노무현 정부를 구출해야 한다는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부총리는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이 용납돼서는 안된다"는 극한 표현까지 써가며 최근 LG카드 사태 이후 극명하게 드러난 금융회사들의 이기주의를 비난했다. 미봉으로 그친 LG카드 사태가 또 다시 불거질 경우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총선 전 경기부양책 나올 듯 이 부총리는 "변화와 개혁은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고 시장불안이나 실업 등 비용과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늘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과도기적인 연계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신용불량자 문제와 청년실업난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총선에서 집권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부총리가 성장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것을 감안하면 '세제 지원'에 주로 의지했던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의 '일자리 창출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親)기업정책으로 돌아설까 이 부총리는 2000년 1월 재경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직전 금융감독위원회 출입기자들과 만나 "그룹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상당수 그룹의 주인이 채권은행으로 바뀌었는 데도 전경련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오너들의 클럽'으로 남아 기득권만 지킨다는 비판이었다. 이 부총리의 이에 대한 현재 인식은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부총리가 기업을 '개혁대상'으로 몰아붙였던 전력과 '구조조정 전도사'였다는 상징성 때문에 친(親)기업 쪽으로 정책을 쉽게 선회하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