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요즘 자금 회전과 관련, '3중고(三重苦)'를 호소하고 있다.


우선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파문 등으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어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을 통한 '직접금융' 길이 막혔다.


또 은행들도 기업연체율 증가를 이유로 여신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출 문턱을 크게 높였다.


게다가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의 물품대금 결제를 미루고 중국과 동남아 기업들이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를 핑계로 수출대금 결제를 일부 중단하는 등 상거래 대금마저 돌지 않고 있다.


직접금융 간접금융 상거래결제 등 기업들의 자금줄이 모두 말라붙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고, 일부에선 외환위기 직전의 연쇄부도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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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채로 촉발된 투신사의 유동성 부족사태는 증시 등 자본시장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돈맥경화'가 주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이같은 현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여유자금을 제때 되찾지 못한 금융회사와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자금스케줄에 차질을 빚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카드채를 비롯한 회사채의 '신용 리스크'가 높아진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융시장은 대우그룹이 부도가 난 후 회사채시장이 경색됐던 지난 1999년 상황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당시엔 만기도래한 회사채의 차환 발행이 전면 중단되자 정부의 보증으로 프라이머리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를 도입, 회사채시장을 되살렸지만 현 상황에선 이같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 신음하는 투신사 =SK글로벌 분식회계가 터진 지난3월 이후 이달 24일 현재 투신사 총 수탁고는 무려 34조원이나 줄었다.


62조원에 달하던 머니마켓펀드(MMF) 잔고는 24일 현재 36조원대로 한달여만에 26조원이나 감소했다.


투신업계는 MMF 잔고 36조원 가운데 절반 가량이 환매를 기다리는 대기자금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카드채 편입비중이 높은 MMF의 경우 현금화되지 않는 이른바 '화석(化石)펀드'로 간주하고 있다.


한 투신사 임원은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며 "이 상태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일부 중소형사들은 최근 한달여동안 수탁고가 20∼30% 줄어들었다.


회사채 시장의 신용리스크가 몇 개월 더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취약한 일부 투신사들은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퍼지고 있다.


더욱이 투신사의 만성적인 자금부족 사태는 주식시장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상황이다.


환매가 지속될 경우 주식을 팔아서라도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대책은 없나 =금융당국은 현 시장상황을 '시장의 실패'로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4월3일 금융회사가 보유한 카드채권을 6월말까지 전액 만기연장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같은 정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일단 지켜보겠다는게 당국의 입장이다.


투신업계는 그러나 이날 현재 시장상황이 개선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 상황에선 6월말에 가서 또 다시 카드채의 만기연장을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으로 가다간 투신권은 물론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만 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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