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영국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증권 간의 경영권 갈등을 계기로 차별적인 국내 투자관련 규제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 의한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해서는 문호가 전면 개방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는 각종 법규에 의해 손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특히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전기통신사업법의 '외국인 투자제한제도' 등을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고 있다. 이들 법규가 본래 도입 취지와는 달리 국내 기업을 외국계 펀드 등에 의한 M&A 공세에 무방비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 곳곳에서 드러난 허점 크레스트증권은 지난달 말 이후 SK㈜ 주식을 집중 매입, 보름 만인 지난 10일 12.39%(14일 현재 14.99%)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SK그룹은 자사주를 포함, 총 31.88%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좌불안석이었다. 계열사들의 지분중 7.6%가 출자규제(순자산의 25%를 넘어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규정) 한도에 걸려 의결권이 제한돼 있는데다 자사주 10.41%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의결권이 가능한 13.41%의 지분만으로 크레스트의 공세에 맞서야 했다. 문제는 이상한 데서 풀렸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SK그룹을 다시 살린 것. 공정위는 지난 2001년 말 공정거래법을 손질하면서 외자유치 촉진을 이유로 출자규제 예외인정 조항중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기준을 '외국인 지분 30%'에서 '10%'로 낮췄다. 이 조항 때문에 단번에 출자한도에 걸렸던 SK그룹 지분 7.6%의 의결권이 되살아났다. 국내 통신사업자 보호를 위해 만든 전기통신사업법의 '외국인지분 제한 규정'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경영권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동법 시행령 3조는 국내 기업이라도 동일 외국인 지분이 15%를 초과하면 '외국인'으로 간주하는데 14일 현재 크레스트의 SK㈜ 지분이 14.99%에 달하자 SK㈜는 졸지에 외국인 회사로 분류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SK㈜가 외국인으로 분류되면 이 회사가 보유 중인 SK텔레콤 지분 20.85% 가운데 12% 정도를 팔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외국인 전체 지분이 기간 통신사업체의 49%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고(제7조1항), 정보통신부 장관이 초과분을 처분토록 명령할 수 있다(2항)는 규정 때문이다. SK그룹으로서는 SK텔레콤 지분이 있어야 나중에 우호세력에 매각하는 식의 방법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어 크레스트가 0.01%를 더 안 사고 참아주도록 달래고 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신종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지난 98년 증권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외국인 투자 규제는 모두 풀면서 출자규제 같은 국내 차별적 제도를 그대로 운영하면서 생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 공정위는 "후진적 소유.지배구조 탓" 공정위의 한 간부는 "출자규제 때문에 국내 기업이 경영권 방어상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외국인이 지분을 10% 이상 산 후에야 계열사들이 지분방어에 나설 수 있고 나중에 외국인이 손을 털고 나가면 다시 출자한도를 초과해 산 지분은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대기업집단의 후진적 소유.지배구조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상당수 대기업그룹의 총수들이 한자릿수의 소수 지분만을 갖고 순환출자 등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것. 특히 이런 허술한 지배구조에다 SK㈜가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는 SK글로벌이 검찰수사를 받자 주가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경영권 공격의 타깃이 됐다는 주장이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